그의 악단, 신의 악단

하나님은 빠짐없이 일하신다

by 라나뜨
N0LqSgr3PXmmKzwr2fGIIJqLj9JMD6TWspQEqtBc75-caEjjoduwT-idQ32K_J9T1-wHkjPbTrzc8cvpkZdkqmcMMEUU3vXjd87Hgzg9ZqG2VD3dDyyM5u-27k4Vl4kwAEMIM5YnLuhCX35J5f_4OA.webp 신의악단(2025) [출처:다음]


오늘 교회 청년대학부와 함께 영화를 봤다. 제목은 '신의악단', 북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당의 기독교 탄압을 다룬 이야기라고 들었다.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했다는 점이 굉장한 관심을 끌었다.


한국교회사를 통해 조선 땅에 어떻게 복음이 들어왔으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와 은혜가 있었는지, 북한의 교회 역사에 대해서도 익히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숨어 살아가고 있는 지하교회들, 그리고 들켜 죽어가는 성도들, 그럼에도 죽기 위해 믿는 자들의 삶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국가이다. 누구도 침해할 수 없고,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선택의 권리가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선거 때에 누구를 지지하든 선택을 존중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설령 길거리에서 전도를 하더라도 '믿으라'고는 할 수 있어도 종교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믿는다와 강요는 엄연히 다르다. '믿는다'는 개인의 선택에 의해 믿어도 되고, 아니어도 되는 그 당사자 개인의 '선택'일 뿐이고, '강요'는 말 그대로 강제한다는 의미니까.

하지만 북한을 그렇지 않다. 마치 과거 로마 제국에서 숨어 믿음을 지키던 선배들과 같은, 어쩌면 그보다 더한 상황에서 믿음을 지키고 있다. 어둡고 캄캄한 지하에서 교회가 되어간다는 건 내 생각보다, 상상보다, 무슨 감정적인 뮤지컬을 보며 우는 듯한 그런 감정 따위가 아니라 정말 생사의 갈림길에서 '하나님'이냐, '밖'이냐. 오직 두 개의 선택지 밖에 없는 굉장한 [ ]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직접 빈칸의 내용을 자신만의 것으로 채워보세요.


내가 지금까지 영화를 보며 울었던 영화는 오직 하나뿐이었을 정도로 아무리 감동적이어도, 아무리 울려고 작정한 신파 영화라도 울지 않았다. '히든 피겨스'라는 인종차별에 관하여 미국의 NASA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영화였는데, 오늘로 '신의악단'이 추가되었다.

눈물이 많이 없는데, 그냥 처음 영화 시작부터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냥 느낌이 이상했다. 북한이라서 그랬는지, 우리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는지.


내가 전공이 만화애니메이션학과로 시나리오나 영상작업 관련한 수업을 많이 들었었고, 여전히 지금도 편집을 하며 연습하기도 하고, 미장센이나 연출력 관련하여 입시 때도 많이 배웠고, 수업도 들었기에 영상에 관해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보는 눈은 있다고 자부할만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감정적으로 느껴질 만한 샷이나 화면은 많이 있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단조롭고 찬찬하게 지나갔다고 느껴졌는데, 이게 '믿는' 사람들이 보면 느껴지는 그런 '믿음'에 관한 마음을 건드리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인들이 서로를 향해 보통 신자, 성도라는 표현보다는 '믿는 자', '믿는 가정', '믿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을 보며 '걔는 기독교인 아니래' 보다는 '믿는 사람 아니래'라는 표현을 쓴다. '형제님', '자매님'도 오글거려서 요즘에는 예배 때 성도들을 지칭해서 표현하는 것 아니면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믿는' 사람들이 보면 건드리는 장면이나 느낌들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설령 자신이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신'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유신론자, 또는 다신론자라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정말 일체 관계없다는 사람이 보면 이게 무슨 생쇼인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 번쯤 꼭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이게 내가 뭔가 이 영화를 보고 믿어라.라고 하는 전도의 목적이 아니라 한 번씩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인 것 같다.


요즘의 대한민국은 조금 이상하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그렇지 않은 행태가 굉장히 이상하다.

많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편안함을 모르며, 이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편하게 발 뻗고 잘 수 있는 것, 교회가 번듯하게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 자유라는 선택의 권리를 갖고 종교를 갖고 있다는 것, 숨어들지 않아도 나 그리스도인이요 말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북한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것들이다.


내가 선교를 다녀왔다지만, 요즘 까먹었던 것 같다.

얼마 전 교회에서 '위드바이블 with Bible'이라는 통독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하루에 7~8장을 읽으면 단 6개월 만에 성경 전권을 1회 통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솔직히 관심 없었다. 읽기야 나중해도 되지, 시간 나면 하자라는 생각이었다. 나중에, 나중에. 그 핑계 중에 제일 큰 핑계가 '시간이 나면'이라는 핑계다. 누구는 그러면 25시간 살고, 누구는 2시간 사는 게 아니라 24시간 똑같이 지내는데, 시간이 없다고 징징거렸다.

시간은 많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하는 것뿐이다. 생각해 보면 밥을 때, 자기 전에, 자고 일어난 직후, 버스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 잠깐의 시간에 굳이 성경을 읽지 않아도 요즘은 기술이 발전해서 유튜브나 어플로 충분히 성경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오늘로 5일이 지났으니까 조금 많지만, 5일 치 한꺼번에 이어폰을 꽂고 듣기만 했다. 내가 읽고 나서 큐티를 하거나 뭔가를 적거나 할 여유는 없고, 물론 이것도 핑계지만, 일단 듣기만이라도 해보자. 일단 천천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 영화를 본 것이다.

원래 목사님께서 오전 12시에 영화를 보러 가자는 말씀을 하셨는데, 내가 '아 제가... 6시에 퇴근을 해서 저는 안될 것 같아요' 했더니 갑자기 시간을 찾아보시고 저녁에 7시에 영화가 있다고 하시며 오늘 7시 10분에 시내 CGV에서 다 같이 본 것이다.

목사님께서는 예습(?)으로 유튜브에서 신의악단에 등장하는 찬양모음집을 미리 듣고 오셨다고 한다... 그래서 왜 예습해 오셨냐고, 왜 먼저 봤냐고 우리 야유를 했었는데, 흔하다고 하면 좀 그렇지만, 아마 일반 사람들도 들어본 찬양이지 않을까 싶다. 유명한 찬양들이 있고, 찬양 아닌 것도 나온다.


실화라고는 하지만 영화적 요소를 위해 인물이 죽거나 하는 등 이야기에 영향을 주는 큰 흐름은 실화겠으나 자잘한 연출적인 요소는 각색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무 은혜로웠다.

믿는 사람들은 아는 영적인 그런 분위기, 마음, 성령의 감화 등을 화면에 담아내는 과정이 약간 작위적이게 느껴지는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좋았다.


그렇지, 북한은 자유롭지 못하지.

그래, 북한은 그가 신이지.

알지, 북한은 살기 위해서 항상 거짓을 품지.


가장 가까운 우리 민족의 청년들, 우리 민족의 아이들, 우리 민족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울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내가 쿠르드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처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북한을 사랑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복도 한가운데서 우리가 다 같이 짧은 기도를 했다. 북한을 위해서, 통일의 여부를 떠나서 그곳의 아이들에게, 그곳의 주의 자녀들에게 더 강한 믿음, 밖과 싸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부어달라고.

기댈 곳 없는 저들에게 예수님께서 등을 내어달라고, 광야를 지나고 있을 항상 심판대를 돌아다니고 있을 항상 시험을 당하고 있을 저들에게 성령님께서 그 따뜻한 불을 내어달라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한다.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이 마음,

아마 이 영화를 보면 느낄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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