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이 칼퇴보다 즐거워지는 책>을 읽고
22살의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청년인턴으로 2개월 동안 코엑스 행사 사무국에서 일한 적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직장생활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복학을 앞두고 있었고, 학교와 직장 중에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었던 나는 고민 끝에 직장을 선택했고, 학교는 졸업만 하기로 했다. 그 선택으로 나의 친구관계를 비롯한 생활의 모든 것들이 바뀌었다. 친구들은 늦게까지 술도 마시고 함께 놀러도 가며 대학생활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때, 나는 언론사에서 박람회 일을 하며 수많은 나이 지긋하신 분들을 상대하곤 했다. 킨텍스 하역장에서 담배 피우는 아저씨들 사이에 어색하게 서있기도 했고, 시도 때도 없는 회식에 원치 않는 술자리도 있었다. 너무 어린 나이였고, 여러 상황에 물 흐르듯 이끌려 다녔다. 내 첫 사회생활은 그렇게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흘러갔다.
그래도 일은 정말 재밌었다. 연간 약 10억의 매출을 올리며 박람회 사업은 순항했고, 좋은 선배들 밑에서 정말 많이 배웠다. 하지만 1년 계약직으로 일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는 사장의 약속은 재계약 날짜가 다가오자 1년 추가 연장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계약서 종이로 날아왔다. 내가 항의하자 정규직으로 다시 제안해주긴 했지만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신입사원을 상대로 야근과 주말근무에 대한 보상도 주지 않고, 인센티브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등의 암묵적인 열정페이를 요구했던 그 사장이 미웠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나는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첫 직장에서의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그동안 계약서에 다시 한번 서명을 하고, 그 시기를 버티게 했던 이유는 전쟁터 같은 사회생활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먼저라는 모 기업의 광고 문구처럼, 사람이 먼저인 주변 분들 덕분에 2년을 버틸 수 있었다. 나도 그런 좋은 사람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원래의 나는 사실 무대에 서는 게 좋았다.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하고, 진행을 하는 내 모습이 좋았다. 노래와 춤도 좋아했다. 앞에서 발표를 하고 퍼포먼스 하는 것도 좋았다. 사직서를 내고자 고민했던 2개월 동안 내 속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계속되는 업무스트레스와 나이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일찍 알아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신입사원으로 뭐든 해보려고 고군분투했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감정을 억제하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 남들에 비해 뒤쳐졌다는 생각에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의 두배로 노력했고 분단위로 시간을 쪼개 썼다. 열등감을 자기관리로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본래 내 모습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2015년 2월,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퇴직금과 그동안 모은 적금을 모두 털어 아나운서 학원에 등록했다. 새로운 도전에 내 전재산을 투자한 것이다. 아나운서 시험을 보려면 시험용 옷도 사야 했고 메이크업도 할 줄 알아야 했다. 무엇보다 보기 좋은 몸매를 만들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운동을 하고 학원에서 25년 동안 습관처럼 해온 말투를 버리고 복식호흡과 발성을 익혔다. 저녁엔 다시 헬스장으로 향했다. 하루 6시간은 스터디룸에서 뉴스를 읽고, 자소서를 쓰고, 웃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아침에 요거트와 블루베리, 점심으로 고구마, 저녁은 방울토마토로 버티며 2개월 만에 8kg을 감량했다. 간절하니 안 되는 건 없었다.
이후 운 좋게 모 언론사의 리포터로 일하는 기회가 생겼다. 그동안 서른 번이 넘는 서류와 면접에서 광탈하면서 '탈락'에 익숙해질 즈음 리포터로 방송에 데뷔하게 된 것이다.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어떤 프로그램을 맡는 건 아니었다. 하루 촬영에 일당은 7만원, 현실은 참혹했다. 그렇게 4개월 동안 6번의 촬영에 참여했다. 또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촬영 일정을 기다리며 스터디룸에서 여전히 같은 패턴으로 생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계속된 기다림과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동료들, 반대로 아나운서의 꿈을 이루어가는 동료들의 상반된 모습을 보며 지쳐갔다. 꿈이 현실로 바뀌었지만 내가 이 길을 순탄히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리포터로 일하면서도 탈락은 계속됐고, 평생 겪어본 적 없는 탈락의 고배를 들이켰다. 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언제나 도전을 외쳤던 내 모습이 무모한 것 같아 회의감도 들곤 했다.
간절한 꿈을 포기해야만 했을 때의 심정은 참담했다. 내가 잘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달랐고, 그걸 인정하기 힘들었다. 정말 큰 마음을 먹고 시작한 길이었기에 포기하기 싫었다. 모든 게 다 잘될 것만 같았지만 그런 긍정심 만으로 덤비기엔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괜한 자존심에 괜찮다 웃으면서 넘겼지만, 매일 밤 울지 않으면 잠들기 어려웠다. 현실과 이상은 너무나도 차이가 컸다. 그렇게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인생의 격동기(?)를 거친 후 2015년 11월, 나는 기업 공채를 거쳐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찬란했던 순간들을 놓을 줄 아는 용기가 생겼다.
그 비워진 공간에 새로운 미래를 향한 것들로 채워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나운서를 준비했던 짧지만 뜨거웠던 그때,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난 현재 홍보담당 일을 하고 있고, 올해가 지나면 어느새 직장생활 4년 만근이다. 나의 어린 시절 패기로 들끓었던 온도는 기억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때의 열정은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다. 그때에 비해 여유가 생기고 돈도 벌었지만 체력도 의지도 부족해지고 있다. 하지만 직장인으로 사는 삶은 나름대로 행복하다. 직장인으로 살면서도 무언가 하고 싶다는 꿈은 버리지 않아도 된다. <출근이 칼퇴보다 즐거워지는 책>, 실제로 동종업계 대기업 홍보팀에 계시고 직장생활 12년차이신 멋진 현역께서 쓰신 책이다. 나처럼 직장과 하고 싶은 일에서 고민하는 3~5년 차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과장님도 내가 지금 겪은 감정을 이미 다 거치셨으니 지금 내 마음이 뭔지 다 안다며 진심을 담아 적어주신 편지 같기도 하다. 직장인도 꿈꿀 수 있다. 누구나 경험하고 있지만 어디에도 말하지 못한 직장인으로서의 고민들을 충분히 공감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이고,
당신 인생의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이다.
스스로에게 길을 묻고 스스로 길을 찾아라.
꿈을 찾는 것도 당신,
그 꿈을 향한 길을 걸어가는 것도 당신의 두 다리,
새로운 날들의 주인도 바로 당신이다.
- 토마스 바샵의 <파블로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