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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프로젝트 Aug 03. 2017

사랑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을 읽고

'당신을 사랑하지만 말로 표현하긴 어려워. 사랑은 그만큼 어렵고 힘든 거니까.'

'당신을 사랑해. 그리고 내 모든 수단을 통해 너가 알게 하고 싶어.'


<노르웨이의 숲>은 주인공 와타나베의 끊임없는 생각의 순환과 갈등의 전개, 성찰의 과정들이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진다. 따라서 주인공을 둘러싼 상황들과 심리전이 머릿속에 흥미롭게 펼쳐진다. 여기서 사랑의 감정은 인물마다 다르게 해석되고 표현되는데, 이를 통해 사람마다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 사실 하루키의 소설에서 여자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당하고, 약한 존재로 그려지는데, 같은 여자로서 이런 컨셉은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의 '인물'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정말 멋지기 때문에 하루키의 작품은 계속 읽고 싶어진다.



#1. 감정에 솔직한 너가 부러워

와타나베는 뭐든 상대가 하는 것에 불만도 없고 그저 받아들인다. 나오코를 사랑하고 미도리도 사랑한다. 심지어 나오코를 마음으로 돌봤던 레이코와의 잠자리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답장이 없는 나오코에게 편지를 쓰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혼자만의 시간으로 고독을 풀어낸다. 미도리 생각일 날 땐 미도리를 만난다. 와타나베는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헷갈린다. 와타나베는 그 누구와도 거리낌없이 어울리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닫혀있다. 나오코가 죽었을 때 와타나베는 온갖 핑계를 대며 자신이 이제까지 나오코에게 담았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정리한다. 나오코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었는지, 동정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본인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죽고 난 뒤 큰 폭풍을 앓게 된다.


나오코는 죽었고 미도리는 남았다. 나오코는 하얀 재가 되었고, 미도리는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 남았다.
(중략) 좋지 뭐, 원래 네 여자였으니까. 결국 그곳이 그녀가 가야 할 장소였던 거야. 그래도 나는 나오코에 대해 나름 최선을 다했어. (중략) 기즈키, 나오코를 너한테 줄게. 나오코는 너를 선택한 거야.


 

반대로 미도리는 솔직함 그 자체이다. 본인의 감정을 여과없이 표현하며, 가족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고 암이 걸려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남자친구가 있으면서도 와타나베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말로 표현한다. 미도리에겐 평생 가족 병간호를 하는 만큼 힘든 건 없었다. 따라서 미도리에게 사랑의 표현은 보다 솔직하고 현실적이었다. 터프하고 표현이 거칠지만 그 안에 진심이 담겨있다. 와타나베와 미도리는 서로 다른 그들의 모습에 끌렸고, 이 것이 그들이 '사랑'을 느끼게 되는 이유였다.


"내가 바라는 건 그냥 투정을 마음껏 부리는 거야. 완벽한 투정. 이를테면 지금 내가 너한테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해. 그러면 넌 모든 걸 내팽개치고 사러 달려가는 거야. 그리고 헉헉 숨을 헐떡이며 돌아와 '자, 미도리. 딸기 쇼트케이크.' 하고 내밀어. 그러면 내가 '흥, 이제 이딴 건 먹고 싶지도 않아.'라며 그것을 창밖으로 집어 던져 버려. 내가 바라는 건 바로 그런거야."
"괜찮아 기다려줄게. 하지만 내게 왔을 때는 나만 봐야 해. 무슨 말인지 알아?"



#2.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모두 사랑으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였다. 사랑은 나의 경험으로서 정의되고, 경험 속의 인물들로 차곡차곡 쌓인다.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연결고리였던 기즈키가 갑자기 자살을 하며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지키겠다는 강한 책임의식이 생겼다. 책임감은 애정을 동반했고 수시로 나오코가 있는 병원을 찾고 편지를 쓰는 것으로 본인의 책임을 다한다. 와타나베에게는 그 것이 사랑이었다. 하지만 나오코는 본인이 강한 애착을 가졌던 기즈키를 잊지 못한다. 함께 다니던 와타나베와의 연은 계속 이어가지만, 그녀에게 와타나베는 기즈키가 없는 세상에서 본인과 세상을 이어주는 동아줄이었다. 와타나베를 놓지 못한 것은 본인이 살기 위한 이유였고 모두를 위한 최선이었다.


나오코가 내게 가르쳐준 건 어떠한 진리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은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오코에 대한 기억이 내 속에서 희미해질수록 나는 더 깊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왜 그녀가 나에게 "나를 잊지 마."라고 말했는지,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 물론 나오코는 알았다. 내 속에서 그녀에 대한 기억이 언젠가는 희미해져 가리라는 것을. 그랬기에 그녀는 나에게 호소해야만 했다. "나를 언제까지나 잊지마. 내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줘."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슬프다. 왜냐하면, 나오코는 나를 사랑하지조차 않았던 것이다.



#3. 사랑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나의 스무살 때 사랑은 어떤 의미였을까. 과분할 정도로 사랑받는 연애를 했다. 그치만 끝이 아름답지는 않았다. 그 후 지금까지의 연애경험을 뒤돌아보자면, 대체로 나는 감정표현에 서툴렀고 소극적이었다. 한 사람과 적응하고 물드는 과정이 나에겐 유난히 힘들었다. 이 후 겪게 된 수많은 이별의 순간에도 나는 애써 덤덤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상대를 보내줬다. 계속되는 상처와 그걸 외면하기 위한 합리화, 그게 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다. 또 다시 같은 시작과 아픔과 상처를 경험하는게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 지금은 애써 보내버린 순간의 나를 위로하며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다가올 사람을 위해 실패의 순간들을 기억한다. 지금 나에게 사랑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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