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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Oct 20. 2022

그런 건가 보다

상대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상대는 그것을 잘 알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우리는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손보미의 <임시교사>는 혼자 사는 한 중년 여인이 그 주위의 사람들의 관계에서 느끼는 외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이 아빠는 계속 이야기했다.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그냥 너무 무서워요. 어머니가 어떻게 되신 거죠? 아니, 제 말은 어머니가 병에 걸리신 건 아는데, 그러니까 저희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정말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고 그냥 아주머니 생각만 났어요. 저는, 저희는...’  그 말을 하던 아이 아빠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가 제 아빠를 따라 울기 시작했고, 결국 아이 엄마까지 울기 시작했다. P 부인은 하나도 난감해하지 않았다. 마치 그런 상황이 올 거라는 걸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혹은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자기의 의무인 양, 그들을 차례로 달래 주었다.”


  임시교사였던 P 부인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변호사 가정의 보모가 되어 그 집안의 많은 일을 도와준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보살펴 주고, 겁이 많은 어린 아들을 보듬어 주며, 삶에 대해 아직은 어려움을 느끼는 변호사와 그의 아내를 성심성의껏 도와준다. P 부인의 진심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몇 달 후 아이 아빠는 승진을 했고, 아이 엄마는 정직원이 되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했고 잘못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로 나쁜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고 통보를 받은 날 밤,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을 때 P 부인은 언젠가 그 집에서 바라봤던 밤의 풍경을 떠올렸다. 가을밤의 기분 좋은 바람을 느끼며, P 부인은 까만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조명, 자동차 불빛의 행렬, 그리고 저 건너의 커다란 관람차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 그때 P부인은 그런 생각을 했었다. 저 불이 모두 꺼지면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P 부인은 자신이 달려가야 하는 곳은 너무도 명백하다고 믿었었다.”


  P 부인에 대한 변호사 부부의 고마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변호사 부부는 요양원으로 보냈고, 어렸던 아이는 학교에 가자, 더 이상 보모였던 P 부인의 따스한 돌봄이 필요 없어졌다. 그리고 나서 변호사 부부는 그동안 P 부인의 도움을 다 잊은 듯 어느 날 갑자기 그녀를 해고한다. 


  “그녀는 자기 삶에서 반복되었던 잘못된 선택, 착각, 부질없는 기대, 굴복이나 패배 따위에 대해 생각했다. 언제나 그런 식이지. 그녀는 항상 그게 용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녀는 그게 용기가 아니라는 걸 깨닫곤 했다. 그렇다면 그건 무엇이었을까? 때때로 무엇인가를 붙잡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삶이, 그녀 앞에 놓인 삶이 버둥거림의 연속이고, 또한 기도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더 이상 기도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 제발 내가 또다시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않게 도와주세요. 그녀는 얼마나 자기 자신이 기도를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랐던가.”


  임시교사를 선택한 것이 어쩌면 그녀의 잘못일 수도 있다. 어떻게든 정식 교사로 되어 학교에 남아 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이 그런 것 하나로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면 그것 또한 잘못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정녕 최고의 선택이 가능한 것일까? 


  “그때 아직 그녀가 젊었던 시절에 그녀는 정식 교사가 되기 위한 시험을 계속 준비해야 했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 그 무능했고 자신에게 기대기만 했던, 그렇지만 자신이 너무나 사랑했던 부모를 떠올렸다. 그리고 동생 부부, 그들에게도 자식이 있었지만 P 부인은 그 애를 본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녀가 사랑하고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들이 있던 시절, 끝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시절. 결국 그녀의 곁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지만 그건-누구라도 그러하듯이-그녀가 선택한 삶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잘못된 일들이 언젠가 아주 조그마한 사건을 통해 한순간에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조그마한 선택이라 생각했던 것이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우리의 인생의 길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 지나고 나서 보니 정말 중요한 선택이었던 것도 있고, 나중에 보니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선택도 있다. 그러한 선택으로 인해 인생이 완전히 잘못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사소한 선택으로 인해 삶의 변화가 생기더라도 또 다른 선택으로 인해 그것이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인 걸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있어 삶은 너무나 불확실하며, 생각한 것대로 바라는 대로 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것도 많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그 선택이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도 그 결과는 내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삶은 그래서 그런 건가 보다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쩌면 최고의 선택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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