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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Oct 20. 2022

당신은 왜 그 사람을 멀리 보냈는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몰랐단 말인가? 어떻게 그것을 모르고 사랑을 했더란 말인가? 사랑을 믿지 못해서, 자신의 시간이 올곧이 담겨 있는 그 삶마저 부인하는 것인가? 서영은의 <먼 그대>는 어느 한 여인의 사랑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른 것은 바라지 않고 오직 존재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가슴 아픈 것은 그러한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얻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사랑이 그렇게 어긋나서 삶마저 지치게 만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녀들이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문자는 남다른 무엇을 소유했던 게 아니었다. 그녀로선 무엇을 하든 그 일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한 것뿐이었다. 콩나물을 다듬든, 연탄불을 피우든, 지붕 위의 눈을 치우든 그를 생각하노라면 어딘가 높은 곳에 등불을 걸어 둔 것처럼 마음 구석구석이 따스해지고, 밝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 따스함과 밝은 빛이 몸 밖으로 스며 나가 뺨을 물들이고, 살에 생기가 넘치게 하는 것을 그녀 자신은 오히려 깨닫지 못했다.”


  문자에게는 한수라는 존재가 전부였다. 아내와 아이 둘이 있는 남자가 그녀의 마음속에 들어온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현실을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전혀 하지 않은 것도 아닐 터인데, 문자는 어떻게 그러한 것을 다 알면서도 그런 순수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일까?


  “한수가 그녀에게 오는 것은 단지 일요일 뿐이었지만, 그는 항시 그녀의 시렁 위에 걸려 있는 등불이나 다름없었다. 시장에서 물건을 깎다가도 그녀는 ‘그가 만약 이 사실을 안다면’하고 깎는 일을 그만두었고, 남과 다툴 뻔하다가도 그를 떠올리면 분노가 촉촉하게 가라앉았다. 이렇게 일요일, 화요일 ...... 토요일을 보내는 사이에 그는 그녀의 존재 자체를 조금씩 연금시켜, 이윽고 일요일이 되었을 땐 그녀의 손길이 닿기만 해도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금빛물이 들었다. 그녀가 그를 위해 마련한 저녁상은, 가난한 자가 일주일 내내 거친 솥과 젖은 걸레로 마룻바닥을 힘들여 닦아서 번 돈으로 성전 앞에 켤 양초를 사는 것같이 마련된 것이었다.”


  손에 닿지 않는 먼 곳에 있는 듯한 존재, 하지만 그 존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저 그녀의 운명이었던 것일까? 멀리 존재하고 있지만, 단순히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충분했던 것일까?


  우리 대부분은 사랑이라는 것을 자신을 위해서, 자기에게 맞는 한에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한 조건이 만족해지지 않는 경우, 서슴없이 사랑을 배신하는 경우도 너무 흔하다. 


  하지만 문자에게는 사랑으로 모든 것이 족했다. 그 어떤 다른 것도 그녀에게는 필요 없었다. 그가 그녀에게 가끔씩 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어느 날 문자는 시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의 내의 자락을 뒤에서 꽉 움켜쥐며 ‘가지 말아요, 오늘 밤만은 함께 있어줘요’하고 등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나 이내 잡은 옷자락을 맥없이 놓아 주는 순간, 울컥 울음이 넘어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예전에는 문자의 손길이 닿은 것마다 금빛으로 물들었던 것이 이제는 그녀의 가슴을 미어지게 할 때가 많았다. 그녀는 그에게 옷을 입혀 주려고 옷걸이에서 양복을 걷어 내다 그 속주머니에 찔려진 두툼한 돈 뭉치를 보고도 목이 메었고, 보자기에 싸서 아랫목에 묻어 두었던 그의 구두를 꺼내다가 밑창에 새겨진 고급 상표를 보고도 가슴이 미어졌다.”


  잡고 싶지만 잡을 수도 없는 사랑이었다. 단순히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는 그녀의 사랑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사랑의 힘이 제일 컸기에, 그 모든 것이 그녀에게 주어지지 않더라고, 심지어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길지라도 있는 그대로의 존재, 그 이상을 바라지 않았다. 존재 그 자체가 그녀에게는 사랑이었다. 그 존재의 어떠함은 그녀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통이여 나를 찔러라. 너의 무자비한 칼날이 나를 갈가리 찢어도 나는 산다. 다리로 설 수 없으면 몸통으로라도, 몸통이 없으면 모가지만으로라도, 지금보다 더한 고통 속에 나를 세워 놓더라도 나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거야. 그가 나에게 준 고통을 나는 철저히 그를 사랑함으로써 복수할 테다. 나는 어디도 가지 않고 이 한자리에서 주어진 그대로를 가지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테야. 그래, 그에게뿐만 아니라, 내게 이런 운명을 마련해 놓고 내가 못 견디어 신음하면 자비를 베풀려고 기다리고 있는 신에게도 나는 멋지게 복수할 거야.”


  아무리 커다란 고통이 그녀를 덮칠지라도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랑의 아픔을 복수한다고 하지만, 그녀에게는 복수마저도 사랑이었다. 그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사랑은 그만큼 크고 깊었다. 


  “그날 저녁 그의 넥타이를 받아 옷걸이에 걸다가 문자는 그것에 꽂혀 있는 진주 넥타이핀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은 이전처럼 미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그녀의 맘속으로부터 그가 가진 모든 것이 무관해졌던 것이다. 그가 누리는 모든 것이 그녀와 무관해졌다. 문자는 오로지 곁에서 담담한 맘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그의 끝없는 욕망이 그의 집 문전에 줄을 잇는 업자들의 선물 상자와 돈 봉투를 딛고 자꾸자꾸 높아지는 것을.”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니 모든 감정과 사고가 사라지고 말게 되는 것일까?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고, 모두 다 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자신의 감정도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 것일까? 추측하건대 그녀의 담담함은 그녀의 사랑을 온전히 보여주고도 남을 것이다. 


   “한수의 아내가 아기를 데리러 나타나기 며칠 전부터 문자는 밤마다 아기를 빼앗기는 꿈을 꾸었다. 때로는 아기를 안고 검은 옷의 괴한을 피해 산으로 들로 쫓겨 다니기도 했고, 때로는 아기를 이미 빼앗겨 실성한 듯이 찾아다니다 잠이 깨기도 했다. 잠이 깨어 보면 꿈속에서 질렀던, 자기 목소리 같지 않은 비명의 여운이 그저도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인 자식마저 빼앗김에 불구하고, 그녀는 그것마저 받아들였다. 너무나 불안하고 걱정이 되어 평상시에 그러한 꿈을 꾸었고, 결국은 현실에서도 그렇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되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사랑이라는 것이 죄가 될 뿐이었다. 차라리 사랑을 하지 않은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겪지 않아도 될 아픔을 경험하진 않았으리라.


  “가엾어요. 그리고 너무너무 데려오고 싶어요. 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데려옴으로써 나 자신을 만족시키고 싶지 않아요. 옥조를 내놓을 때 이미 그 아이는 제 맘에서 떠나갔어요. 그렇다고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녜요. 제가 옥조를 사랑하는 맘은 여느 엄마들이랑 달라요. 얼마 전 칭기스칸에 관한 전기를 보았어요. 그는 금나라를 치고 나서, 그 낯선 나라의 낯선 사람에게 자기 아들을 버리고 떠나더군요. 칭기스칸으로 하여금 영웅이 되게 한 것은 아들을 버림으로써 사랑까지도 밟고 지나갈 수 있었던 바로 그 힘이었던 것 같아요. 소유에 대한 집념과 마찬가지고 혈육 역시도 초극되어야 할 그 무엇이라 여겨져요.”


  모든 것을 초월하게 될 수밖에 없는 그녀, 자신의 자식마저 넘어서야만 했던 그녀, 그런 그녀에게 왜 그 사람은 그녀를 그렇게 멀리 보내고 마는 것일까?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일까?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일까?


  “고통의 사닥다리를 오르는 일이 다 쓸데없는 짓이라면? 이 길의 끝에 아무것도 없다면? 모든 것이 다 조작된 의미라면? 아픔과 고통의 끝이 또 다른 아픔과 고통의 연속으로 이어진다면.....?”


  그녀에게 그는 항상 먼 그대였는지도 모른다. 그 거리를 좁히고 싶었지만, 그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 절대적인 거리인지도 모른다. 영원히 그 먼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그 거리가 좁아지기를 바랐지만, 언젠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그가 단추를 채우는 동안 문자는 먼저 부엌으로 나와서 그가 신기 좋게 구두를 가지런히, 그리고 약간 벌려 놓아 주었다. 밥을 푸다 만 밥솥에서 김이 서려 올라 자욱했다. 문득 쓰라린 비애를 느꼈으나 그녀는 조용히 웃었다. 한수는 문자가 문밖에서 배웅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곧장 뚜걱뚜걱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언덕을 내려가 잠시 후엔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문자에겐 그가 자기 시야에서 끝도 없이 멀어지고 있을 뿐인 것으로 느껴졌다. 그는 이미 한 남자라기보다, 그녀에게 더 한층 시련을 주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멀어지는 신의 등불처럼 여겨졌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것에 도달하고픈 열렬한 갈망으로 온몸이 또다시 갈기처럼 펄럭였다.”


  그렇게 떠나보내야 한다. 떠나보내고 나서도 그립지만 지금은 그렇게 떠나보내야 한다. 차라리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하고 담담히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지 모른다. 비록 그 사람이 멀리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그 사랑이 어떠한 것이든 그녀에게는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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