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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Oct 24. 2022

2022년 춘천 마라톤을 뛰고 나서

나의 가능성의 영역을 넓히는 일, 그것이 내가 오늘 존재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가능성의 영역을 넓힌다는 것은 나 자신의 한계를 깨고, 더 나은 나로 거듭 태어나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나의 모습에 안주한다면 더 나은 나 자신을 찾지 못한 채 새로운 나를 만나지도 못할 것이다. 새로운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현재의 나를 넘어서야 한다. 현재의 나를 가두고 있는 그 한계의 울타리를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그 울타리에 갇혀 있는 한 새로운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나와 조우할 수 없다.


  내면의 한계에 마주하였을 때 이에 굴복하지 않고 버텨내 그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육체적 한계에 다다랐을 때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가능성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언제 어디서나 힘들고 어려운 고비를 만날 수밖에 없다. 고통과 괴로움이 동반된 삶의 무게에 짓눌리는 경우도 있다. 연이은 아픔과 외로움 이로 인해 홀로 고독 속에 빠지기도 한다. 드넓은 광장에 아무도 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만 해야 한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운명적 회오리에 접하기도 한다. 제발 나에게서 사라져 버리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불운과 마주할 수도 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들로 나의 갈 길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이 어쩌면 더욱 강한 나로 거듭 태어나, 보다 나은 자아로 될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한 일들이 너무나 버겁고 힘에 겹지만, 나 자신을 믿고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으로 접하는 것이 진정 나를 사랑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보라,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친다. 초인의 대지의 뜻이다. 그대들의 의지는 초인은 대지의 뜻이라고 말한다. 나의 형제들이여, 내가 그대들에게 맹세하거니와 이 대지에 성실하고 천상의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자신들이 알든 모르든 독을 섞는 자들이다. 그들은 삶을 경멸하는 자, 죽어 가는 자, 독에 중독된 자들이며 이 대지는 그들에게 지쳐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죽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자가 진정한 초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인이 되고자 하는 것은 운명의 부름일지도 모른다. 더 나은 미래의 나를 위해 운명이 나를 그렇게 부르고 있다.


 주어진 기회로 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도 있겠지만, 더 나은 나를 위해 스스로 어려움에 빠뜨려 이를 극복하여 나의 한계를 깨뜨릴 수도 있다. 애써 내면의 힘을 기르기 위해 스스로 훈련을 할 수도 있고, 더 나은 나를 위한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


  2022년 10월 23일에 있었던 춘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보았다. 나의 육체적인 한계는 어디인지 알고 싶었다. 생애 처음으로 42.195km를 완주해 보았다. 이제는 나는 안다. 나의 육체적 한계가 어디인지를. 한계를 넘어서 보니 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어려운 일이 나에게 다가와도 그것을 극복하는 것에서 나의 살아있음을 증명하려 한다. 앞으로 또 육체적인 마라톤을 뛸지는 모르지만, 다른 마라톤을 뛰며 나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그것이 나의 가능성의 영역을 넓히는 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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