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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Oct 27. 2022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우리의 인생도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가슴이 뛰거나 가슴이 시리고, 마음이 기쁘고 마음이 아프며, 행복을 느끼고 불행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조경란의 <좁은 문>은 어느 한 남녀의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 대한 이야기이다.


  “농밀한 안개가 입김처럼 뜨겁게 다가왔다. 남자는 그러다가 여자의 얼굴이 아주 보이지 않게 될까 봐 초조했지만 그것이 막이 걷히듯 확 사라질까 봐 더 두렵기도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틈이 있고 중요한 건 그 틈을 없애는 게 아니라 지켜나가는 것이라면 그 순간 남자는 여자와 자신 사이의 틈을 안개가 대신 채워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네를 타는 여자는 너무 높은 곳에 있고, 여자는 안개를 안개라 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꿈결인 양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어둠과 안개 속에서 남자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다 지난 일이라는 걸, 남자는 믿을 수 없었다.”


  안개를 바라보면 왠지 신비롭고 마음이 편하기도 하지만, 이내 곧 사라져 아쉽기도 하다. 언젠간 사라질 줄 알면서도 안개를 한참이나 바라보곤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안개로 채워져 있는 것일까? 어느 순간 너무 좋았다가 시간이 지나가면 그 좋은 감정마저 다 사라지곤 한다. 인간의 감정도 안개와 같은 것일까? 그로 인해 인연도 왔다가 그렇게 사라지는 것일까?


  “그 종을 치는 모든 이들은 바라던 소망을 이룰 수 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아직 누구도 거길 가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짙은 안개가 길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안개 속으로 한번 사라진 사람들은 다신 돌아오진 않는다. 한번 그 길을 떠난 사람의 안부를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 섬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소원의 종이라는 전설을 남자는 기억할 따름이었다. 안개…. 남자는 다시 안개를 생각했다.”


  한번 사라진 안개는 다시 볼 수는 없다. 다음날이 되면 또 다른 안개가 나타날 뿐이다. 하지만 그 안개는 모두 다른 안개일 뿐이다. 영원히 잡을 수 없고,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안개일지 모른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도 시간의 함수인 것일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러한 감정이 있었냐는 듯, 그냥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일까?


  “여자도 그것을 안개라고 부를 것인가. 남자는 자꾸만 반문했다. 안개는 지상에 내려온 구름이다. 땅에 서 있는 사람이 높은 산의 정상에 있는 미세한 물방울의 무리를 보면 그 사람은 그것을 구름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산의 정상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주위의 안개일 뿐이다. 남자는 안개를 본다. 여자는 구름이라고 한다. 남자는 구름을 본다. 여자는 그걸 안개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을 땅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는 이슬이라고 부른다. 남자와 여자는 같은 이름을 제각각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똑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사람마다 각각 다를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당연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누군가에게는 안개로 보이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구름으로 보일 뿐이다. 그러는 사이 안개는 사라져 버리고 구름은 흘러가 버린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스쳐 지나가 버리고 만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 여자는 발끝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하체를 쭉 뻗는다. 그런데 내가 그를 만난 적이 있었던가. 여자는 장담할 수 없었다. 안개 속에 서 있던, 아주 잠시 대화를 주고받았던 그 남자는 전당포 남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여자는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그를 만났었다는 유일한 증거일지도 모를 오래된 전표 한 장이 주머니에서 떨어지는 것을, 그 전표를 이제 막 계산을 치른 남녀가 무심히 밟고 지나가는 것을 여자는 알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찾고 싶지만 스쳐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라져 버린 것 또한 다시 만날 수 없다. 만남과 헤어짐은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상수가 아닌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함수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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