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니모는 “Clown fish” 또는 “Anemone fish”라고도 한다. “Anemone”에서 편의상 “nemo”를 따와 영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미국의 니모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어종 가운데 가장 비슷한 것은 “Amphiprion Ocellaris”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어종을 흔히 “흰둥가리”라고 부른다. 등에 흰 줄무늬가 있어서 이렇게 이름을 붙인 듯하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니모와 흰둥가리는 비슷한 어종이기는 하지만 같은 어종은 아니다.
니모는 평생 말미잘과 더불어 공생을 한다. 상리공생(相利共生)이다. 니모는 자신의 포식자를 말미잘에게 유인하여 말미잘의 먹이잡이를 돕고, 자신은 말미잘로부터 찌꺼기를 얻어먹는다.
니모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성전환이다. 니모는 인접성 자웅동체(sequential hermaphrodites)이다. 태어날 때는 수컷으로 태어나지만, 도중에 성을 바꾸어 암컷으로 될 수 있다. 하지만 한번 암컷으로 성전환이 되면 다시는 수컷으로 돌아올 수 없다.
영화 “니모를 찾아서”를 보면 니모가 홀아버지인 말리에 의해 키워지나 이는 일어날 수 없는 경우다. 니모의 세계에서는 엄마인 암컷이 죽으면 그 집단에 있는 가장 큰 수컷이 죽은 엄마를 대신하여 스스로 암컷으로 변해 새끼 니모를 돌본다. 즉, 영화의 니모의 엄마가 죽었으니 아빠가 엄마가 되어 니모를 돌보게 된다는 말이다. 만약 수컷인 아빠가 죽었으면 엄마는 그대로 있고 다른 수컷이 아빠의 역할을 한다. 영화를 만들 때 어린이가 보는 애니메이션이기에 성전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기 때문에 홀아버지에 의해 니모가 키워지는 것으로 대본을 만든 것이다.
니모의 경우는 이렇듯 성전환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생명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다양성이라 할 수 있다. 지구 상의 수많은 생명체의 다양한 일생은 실로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성전환을 할 수는 없다. 최근에 와서야 인위적으로 의학의 도움을 받아 성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에 이러한 성전환과 관련된 사건이 있었다.
1996년 어떤 남성이 한 여성을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그 여성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것이 발견되었다. 당시의 형법 제297조는 다음과 같았다.
“형법 제297조(강간):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당시 강간죄의 성립 요건은 “부녀”를 강간한 경우에 해당한다. 여자가 남자를 강간한 경우나 남자가 남자를 강간한 경우에는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았다. 남자는 강간죄의 피해 대상 자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힘없는 남자는 그 어떤 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었다.
이 사건에서의 문제는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을 남자로 보아야 하는지 여자로 보아야 하는지가 논점이었다. 당시는 1996년으로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이다. 판결은 어떻게 나왔을까? 당시 재판부는 남자와 여자의 기준을 생물학적인 염색체로 판단하여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은 성염색체가 XY이므로 여자가 아닌 남자이기 때문에 강간죄의 피해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의자를 무죄 판결했다.
이 판결의 후폭풍은 어땠을까? 당연히 전국의 모든 여성 단체들이 들고일어났다. 당시 형법 그 자체에 문제가 있고, 판결도 잘못된 것이라고 해서 여성 단체들의 저항이 그야말로 엄청났다.
그러던 중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하지만 그 판결은 완전히 달랐다.
대법원 2006년 6월 22일에 선고된 “대판2004스42, 전원합의체판결”이 바로 이 경우였다. 이 판례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남성과 여성에 대한 기준을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종래에는 사람의 성을 성염색체와 이에 따른 생식기, 성기 등 생물학적인 요소에 따라 결정하여 왔으나, 근래에 와서는 생물학적 요소뿐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 인식하는 남성 또는 여성으로의 귀속감 및 개인이 남성 또는 여성으로 적합하다고 사회적으로 승인된 행동, 태도, 성격적 특징 등의 성역할을 수행하는 측면, 즉 정신적, 사회적 요소들 역시 사람의 성을 결정하는 요소 중의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으므로, 성의 결정에 있어 생물학적 요소와 정신적, 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즉, 이 판례의 핵심은 남성, 여성의 기준은 성염색체가 중요하기는 하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사회적 성이 더 중요하게 판단될 때는 성염색체와 상관없이 남성, 여성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판례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적 성이라는 것의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회적 성의 기준이 무엇일까? 우리나라 어떤 법에도 사회적 성에 대한 기준이 나와 있는 것은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사건 당사자가 사회적으로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어떻게 판단했던 것일까? 그것은 당시 전원합의체에 참가한 대법관의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었다.
당시의 다수결 판단이 사건 당사자를 사회적인 여성으로 보았다. 하지만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은 것은 만약에 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하고, 시간이 지나 대법관의 상당수가 바뀌었다면, 새로운 대법관들이 다수결로 판단을 할 때 예전의 다수결의 결과와 똑같이 나올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대법관의 상당수가 보수적이라면 다른 다수결의 결과도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 문제는 그렇게 마무리되어 강간범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형법 제297조는 바뀌지 않았다. 사회가 변하고 여론이 심화되자 결국 국회에서 이 형법 조항을 2012년 개정했다. 현재의 형법은 아래와 같다.
“형법 제297조(강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개정 2012.12.18.>”
여기서 “부녀”가 “사람”으로 대체되었다. 이제 강간죄의 대상은 여성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사회적 성의 기준은 마련되어 있지도 않고 이를 마련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은 사회적 기준은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의 염색체에 대한 것도 고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흔히 여성은 성염색체가 XX, 남성의 경우는 XY이고 이를 기준으로 이제까지 생물학적 성을 결정하여 왔다. 하지만 어떤 한 사람의 성염색체가 XX이거나 XY가 아닐 경우에는 어떻게 판단하여야 할까?
사람에게는 성염색체가 XX나 XY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성염색체도 있다. 인간이 태어날 때 성의 결정은 부와 모로부터 물려받는다. 엄마의 XX가 X와 X로 분리되고 아빠의 XY가 X와 Y로 분리되어 이것이 결합하여 XX나 XY로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XXY와 X로 되는 경우는 없을까? 당연히 있다. 가능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다. 염색체 복제 과정에서 성염색체의 돌연변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나는 아기들도 실제로 존재한다. 물론 극소수의 경우에 해당하기는 한다.
XXY의 성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나는 아기를 흔히 “크라인펠터 증후군”이라 한다. 이 경우에는 외관상은 남자이나 여성처럼 가슴이 크게 발달하게 되고 불임이 된다. 성염색체가 X만 가지고 태어나는 아기들도 있다. 이는 “터너 증후군”이라 하는데, 외관상으로는 여성이지만, 키가 상당히 작고 역시 불임이 된다. 이런 경우 이들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것인가, 남성인 것인가? 사회적 성의 기준도 애매모호한 마당에 이러한 생물학적 염색체 돌연변이일 경우에는 남성과 여성의 기준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 것일까? 그때도 대법관의 다수결로 결정할 것인가?
현재 우리나라 법원조직법 제4조는 다음과 같다.
“법원조직법 제4조(대법관) ① 대법원에 대법관을 둔다.
② 대법관의 수는 대법원장을 포함하여 14명으로 한다.”
이 법에 의해 우리나라 대법관의 수는 14명인데 다수결 결과 만약 7:7이 나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투표로 결정해야 하는 것일까?
법은 어떻게 보면 기준이다. 우리는 그 기준에 대해 보다 더 깊게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만든 어떤 기준이나 규범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만든 그 기준에 우리가 얽매여서는 안 된다. 그건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 자기 자신 또한 마찬가지이다. 현재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나중에 바뀔 수도 있다. 그 열린 가능성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은 한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흘러도 항상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남성, 여성의 기준도 바뀌는 마당에 현재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고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유아기적 사고라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니모의 세계가 더 나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때가 되면 니모 한 마리가 저절로 성전환을 할 수 있으니 우리 인간들 세계처럼 남성이냐 여성이냐 판결도 해야 하는 그런 복잡한 것이 필요 없으니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