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적으로는 옳지만, 전체적으로는 아니다

by 지나온 시간들

양자역학의 선구자였던 닐스 보어는 1927년 상보성 원리를 발표합니다. 이것은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에서 발견된 새로운 계산 형식을 인식론적으로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한 결과 제안되었습니다. 보어는 평상시에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코펜하겐대학의 생리학 교수였던 아버지와 그 친구들이 토론하는 것을 보았고 토론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상보성 원리에 따르면 파동 또는 입자라는 전혀 다른 배타적인 모델로 원자의 세계를 측정할 수 있지만, 원자 차원의 현상을 완전히 기술해 내기 위해서는 두 모델 모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즉, 모든 물리적 현상에는 양면성이 있으며 각자 다른 입장에서 관찰한 결과는 부분적으로 옳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보어는 상보성 원리를 “서로 배타적인 것은 상보적이다.”라고 말합니다.


보어는 상보성 원리를 물리학뿐만 아니라 다른 과학 분야와 사상 전반에도 적용되는 원리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는 생명현상을 설명하는 두 방식인 물리적 분석 방법과 기능적 분석 방법이 서로 정반대의 입장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사실은 상보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게다가 그는 인류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유전적 측면뿐만 아니라 역사적 전통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며, 이 두 가지가 상보적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근거에서 그는 당시 독일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었던 인종 차별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상보성 원리는 불확정성 원리와 더불어 양자역학의 확률적 특징을 잘 표현한 것입니다. 이로써 이 두 가지 원리가 양자역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원리로 자리매김합니다.


상보성 원리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원자물리학의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자는 원자핵을 중심으로 운동을 합니다. 전자의 운동과 그 특성에 대해 알고자 할 때 어떠한 경우 전자를 입자로 취급하면 옳은 결과를 얻습니다. 즉 이 경우 전자의 입자성은 부분적으로는 맞습니다. 하지만 전자의 다른 경우를 파악할 때 전자의 입자성만으로는 옳지 않습니다. 즉 전자의 입자성만으로는 부분적으로는 옳지만, 전체적으로는 옳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전자의 입자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에 전자의 파동성이 상보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하이젠베르크가 쓴 자전적 저서는 “부분과 전체”입니다. 그가 왜 그렇게 책의 제목을 지었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선택한 삶의 과정에서 옳다고 생각하여 결정한 것이 부분적으로는 옳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에게 협력한 것이 대표적이라 할 것입니다. 당시에는 애국심으로 인해 나치 권력에 협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독일의 핵폭탄 개발 계획에 참여했지만, 전쟁이 끝나 전범으로 체포되어 런던으로 압송되어 보니 그때의 선택이 전적으로 옳지는 않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부분적으로는 옳지만, 전제적으로는 옳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나름대로 옳다고 생각하여 말하고 행동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지만, 그것은 부분적으로만 옳을 수 있고 전체적으로는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 상보성 원리가 필요합니다.


자신은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을 위해 옳다고 생각하여 무언가를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것이 옳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상보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면 더 나은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옳을 뿐, 아직 전체적으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더 나은 일상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상보성 원리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나는 어떠한 것을 더 알아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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