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혜화동 대학로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소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했습니다. 제목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기하는 모습에 너무나도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연기를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내는 그 모습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객석에 앉아있던 저는 연극이 끝난 후 오래도록 박수를 쳤습니다. 배우들이 모두 나와 한 명씩 인사를 하였는데 그들의 표정에서 어떤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배우들은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하였고, 저는 제가 할 일을 열심히 한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한 일은 그저 연극을 보고 끝난 후 박수를 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강가에 서서 물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듯, 그렇게 제 주위의 많은 일들에도 제 자신이 직접 관여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이 더 아름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요즈음에는 부모님이 하시는 모든 것을 그냥 다 받아들이고 바라만 보곤 합니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하시는 일에 자식으로서 신경 쓴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그분들의 삶에 끼어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하고 싶은 것 하시게 내버려 두고, 부모님 주위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도 그냥 바라만 보곤 합니다. 어떻게 보면 비합리적인 것도 있고, 더 나은 선택도 있지만, 이제는 그냥 부모님의 선택대로 저는 따르기만 합니다.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는 핑계로 제 자신의 욕심에 따라 아이들에게 간섭하고 관여하고, 때로는 혼내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들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제 자신의 판단대로 억지를 부리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이들의 인생의 주인공은 그들 자신이기에 저는 이제 객석에 조용히 앉자 그들이 하는 것들을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연극을 보다 객석에 있던 제가 배우들의 연기 도중에 앞으로 나가 그들을 간섭한다면 그 연극은 아마 엉망진창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저의 생각이 있고, 경험이 있다손 치더라도, 자신의 열정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배우에게 제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한다면 오히려 우스운 꼴밖에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연기를 잘하건 못하건, 연극이 재미가 있건 없건,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연기하는 그 자체가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비록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나 엑스트라라 할지라도 그 무대는 배우들의 무대일 뿐 저의 무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연극이 끝난 후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치는 것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제 주위에 있는 좋은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일부는 소식이 끊기기도 했지만,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들과 오래도록 함께 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만 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고, 이것이 더 좋고 저것은 안 좋다는, 제 자신의 의견은 오히려 그들과의 좋은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고 말 것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지켜보며, 힘들 때 격려해 주고, 잘 되었을 때 진심 어린 박수를 쳐주는 것이 저의 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 자신의 삶도 이제는 조금씩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지켜보며 살아가려 합니다. 너무 과한 목표나 너무 거창한 계획을 세워 살아가기보다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살피면서, 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제 자신의 삶을 지켜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모든 것에서 주인공이 되려고 했던 저의 욕심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비록 주인공이 아니고, 조연도 아닌, 객석에서 바라만 보는 관객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그것이 모든 것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켜만 보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행복한 기회가 주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