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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만 특별하다

by 지나온 시간들

오래전에 시카고에서 출발해 캘리포니아까지 가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70번을 타고 로키산맥을 넘었을 때 너무 힘들었던 경험이 있어서 북쪽 루트인 80번을 택했습니다. 아이오와를 지나 네브래스카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오후쯤에 와이오밍을 지날 때였습니다. 와이오밍과 몬태나 그리고 아이다호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와이오밍의 경우, 면적은 남북한 합친 것보다 넓지만, 인구는 고작 50만 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한반도보다 넓은 면적에 청주보다 적은 인구가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운전을 하며 고속도로를 달릴 때 산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평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해발고도는 높은데 산들이 드문 것으로 보아 아마 고원 비슷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와이오밍 북쪽에 옐로우스톤이 있으니 해발이 결코 낮을 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운전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경치는 별반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지나온 산들도 그저 평범했고, 달리고 있는 고속도로 주변의 평지도 특별한 것도 없이 일상에서 자주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달리다 보니 눈앞에 지평선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자로 쭉 뻗은 고속도로에는 차들도 별로 다니지 않았고, 주변에 사람들이 사는 동네도 없었고, 심지어 집 한 채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백미러로 뒤를 보니 제 차를 따라오는 차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고작 한두 대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마주 오는 차선에서 달리는 차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게 20~30분 정도를 아무 생각 없이 운전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앞을 보니 앞에도 지평선이 보였고 뒤로도 지평선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일자로 쭉 뻗은 고속도로에서 제 앞에 자동차가 한 대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미러로 뒤를 보았는데 제 차 뒤에도 자동차가 한 대도 따라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깜짝 놀라 다시 주위를 살펴보니 분명 저는 고속도로 위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데, 사방 제 주위로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고속도로 위에서 운전하는 저밖에는 그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두렵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한 느낌이 가슴으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하늘과 땅과 나밖에 없는 공간이 있다니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정말 신비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저 멀리 교차로에서 자동차 한 대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다른 차들도 서서히 나타나며 그 특별했던 공간과 시간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시공간은 별반 특별한 것 없는 평범했던 것일 수 있습니다. 하늘은 어디에나 있고 땅도 그렇고 지평선이 있는 평원도 찾아보면 많을 것입니다. 잠시 아주 작은 확률의 순간이 저에게 다가왔을 뿐입니다.

어제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한 시간 정도 조깅을 한 후, 아침을 먹고 오전에 해야 할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다시 해야 할 일을 하고, 저녁을 먹고 조금 쉬면서 티비를 보다가 다시 할 일을 하고 12시쯤 잠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어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현재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오늘이 지나고 나면 아무리 원한다고 하더라도 제가 보낸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지극히 평범합니다. 그 나이 다른 젊은이들 같이 생활을 하고 나름대로 꿈을 키우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의 부모님도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합니다. 이제 연세가 많아 운동도 하지 못하고, 그저 삼시세끼 식사를 하고 티비를 보며 잠을 주무시는 것 외엔 다른 일을 하지는 않으십니다.


제가 하는 일 또한 지극히 평범합니다.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매일 하는 일이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 같은 것일 뿐입니다. 개학을 하면 매년 가르쳤던 과목을 다시 똑같이 가르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16년을 매 학기 가르쳐왔습니다. 특별한 것 없는 수업을 그저 평범하게 학생들에게 수업을 해오고 있을 뿐입니다.


예전에는 그 평범함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엔 그러한 평범함이 너무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요? 그동안은 저에게 주어진 평범함이 소중한 것인지를 왜 몰랐던 것일까요?


와이오밍의 산과 평원, 고속도로 그리고 제가 타고 가던 자동차는 어쩌면 지극히 평범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평범함 속에 존재하는 특별한 시공간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시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도시로 와서 보게 된다면 그들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공간이 아주 특별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들이 사는 시공간은 사람이 별로 없는 하늘과 땅과 지평선을 언제나 볼 수 있는 곳이 평범한 곳일 테니까요.


그 어떤 공간과 시간도 평범하지만 특별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전에는 그러한 것을 잘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저에게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현재 저에게 주어진 것이 평범해 보여도 정말 특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 제가 존재하는 시공간은 평범할지 모르나 이제 저에게는 특별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지극히 평범할지 모르나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합니다. 지금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 평범할지 모르나 저에게는 특별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비록 평범할지 모르나 특별합니다.


저에게 현재 주어진 그 모든 것은 평범할지 모르나 지극히 소중하고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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