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 보면 처음 만나게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예전에 접해본 적도 없고, 경험해 본 적도 없기에, 생전 처음 만나게 되는 것들은 왠지 모르게 마음에 다가옵니다. 신기하고, 새롭고, 소중한 것과 같은 그러한 느낌이 가슴속으로 밀려옵니다.
예전에 강원도 인제에 있는 곰배령에 올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곰배령이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무엇으로 유명한 곳인지, 어떤 경치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여행을 가기 전 미리 어떤 곳인지 알아 보고 가는 것이 당연했지만, 그때는 너무 정신없는 일들이 많아 곰배령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가지지 못한 채 그냥 경치가 좋다는 말만 듣고 무작정 올랐습니다. 강원도 인제를 가본 적도 없었고, 말 그대로 태어나 처음으로 곰배령에 올랐습니다. 찬 바람이 부는 한겨울이었는데 오르기 며칠 전 눈도 내린 상태였습니다.
눈에 덮인 겨울 산이려니 하는 생각으로 잠시 올라가서 산 아래 경치를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던 힘들었던 것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올랐던 기억이 납니다. 산 입구부터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 날짜를 잘못 잡았나 하는 생각으로 괜히 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 덮인 산은 걷기에도 불편했고, 곳곳에 빙판도 많아 위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높지 않아서 시간은 별로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위안이 되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 겨울 산을 오르고 나니, 곰배령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곰배령에 대해 전혀 몰랐던 저였고, 심지어 곰배령 사진을 예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곰배령에 도착해 바라본 눈 덮인 겨울 산은 정말 저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제가 그러한 시공간에 서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할 정도로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많은 곳을 다녀봤기 때문에 신비롭고 멋진 경치들을 많이 봤음에도 그날 제가 본 곰배령은 정말 너무 인상적이어서 제 마음속 깊이 들어와 버렸습니다. 하늘과 사방으로 하얀 눈 덮인 산밖에 없는 그 시공간은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워 산을 다시 내려가기가 싫을 정도였습니다.
핸드폰을 꺼내 사방을 돌아가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받은 그 감동을 사진에 담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사진은 고작 하얀 눈이 덮인 산에 불과했습니다. 제 마음속에 들어온 곰배령과 사진 속에 있는 곰배령은 왠지 차이가 나는 듯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사진을 열심히 찍었습니다. 나중에 그 사진을 보면 그나마 제가 받은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곰배령을 다시 찾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여유가 되면 다시 한번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역시나 여러 가지 일들로 다시 갈 기회는 없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시 곰배령을 찾는다면 제가 처음 곰배령을 갔을 때와 같은 그러한 신선한 감동을 느끼지는 못할지도 모릅니다. 생전 처음 본 것과 두 번째 본 것과는 다를 것입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난생 처음 만나는 것이라면 그 모든 것이 신기하고 신비롭고 아름답고 소중하게 생각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만나는 것들이 태어나 처음 접하는 것이라면 그만큼 새롭게 느껴질 것입니다.
세월이 참으로 빠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도 세 아이 모두 이제 성인이 되었습니다. 세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을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입니다. 큰아이, 둘째 아이, 막내가 태어났던 그 순간들이 저에게는 가장 아름답고 기쁘고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아이들과 만났던 그 순간은 가슴이 시리도록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순간들을 잊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저의 욕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남들처럼 공부하고, 좋은 학교를 보내고, 아이들의 더 좋은 미래를 위한 저의 탐욕이 그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망각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이제는 저의 욕심을 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만이라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공부건, 직장이건, 돈이건, 명예건, 그러한 것들을 아이들과 연관시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이상은 그저 하늘이 주는 보너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아이들을 보면 난생 처음 만난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전쟁에 나갔다 돌아온 것 같은, 죽었다 다시 살아 돌아온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저 아이들이 저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느낌입니다.
이제 제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난생 처음 만나는 것처럼 생각하려고 합니다. 오늘 만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대하려고 합니다. 삶이 한 번 뿐이듯, 제 주위에 있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 모든 것들을 위해 마음을 열려고 합니다. 비록 나의 능력의 한계가 있겠지마는 그래도 노력하고 훈련하다 보면 예전처럼 제 탐욕에 빠져 살지는 않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저 주위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난생 처음 보는 것처럼,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것처럼, 그렇게 대하려고 합니다. 저에게 지금 주어진 모든 것은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이 겨울을 보내며 생각하게 됩니다.
꽃이 피는 봄이 되면 다시 곰배령을 찾아볼까 합니다. 올해도 비록 많은 일들로 시간이 없겠지만,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어 가보고 싶습니다. 봄의 곰배령은 저에게 난생 처음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