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초등학교 운동장 구석에는 모래밭이 있었습니다. 원으로 만들어진 그곳에서 친구들과 씨름도 하고 모래성도 쌓으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모래성을 쌓으며 놀다 보면 너무 재미가 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가지각색의 모래집을 지으며 마음껏 놀다 해가 지고 노을이 지면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등교해 보면 모래밭에 만들어 놓았던 모래성은 이미 허물어져서 흔적도 없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정성을 다해 만들어 놨지만, 하루 이상을 간 적이 없었습니다.
여름이 되어 바닷가에 가면 더 멋있고 커다란 모래성을 지으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바닷가의 모래는 학교의 그것과 달라 물기가 있어서 모래성을 만들기 훨씬 쉬웠습니다. 나름대로 건축가가 된 듯한 생각으로 멋진 모래집을 짓곤 했습니다. 하지만 바닷가의 그 모래성도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잠시 바닷물 속에 들어갔다 오면 다 허물어져 있었으니까요.
마음을 다해 정성 들여 지었던 그 모래성들이 갑자기 생각이 납니다. 그때의 어린 제 마음도 기억이 납니다. 정성을 다해 하나하나 지어갔던 그 시간들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지은 모래성이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져 버린 것처럼 이생에서 마음을 대해서 해온 일들이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됩니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그것들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것인지, 오래도록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는 있을지 내심 불안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노력을 하더라도 운명이라는 것이 힘이 세서 그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 버리는 것을 가끔 보게 됩니다. 그러한 일들이 저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입니다. 항상 조심하고 주의를 해도 제 능력을 벗어나는 일은 감당하지를 못하니 아쉬울 뿐입니다.
인생이 모래성을 쌓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너무 허무할 테니까요. 그래도 나름 노력한 것들이 의미가 있어 오래도록 남겨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인생도 어릴 적 모래성을 쌓던 모래밭 같은 놀이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저 무언가를 하며 놀다가 시간이 지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그러한 놀이터 말입니다. 그 놀이터에서 아무리 모래성을 쌓아도 때가 되면 다 허물어지고 말 것입니다.
무너지지 않는 모래성은 없는 것일까요? 제가 지금 쌓고 있는 모래성은 어떤 모래성인 것일까요? 나 자신만이 스스로 만족해버리고 마는 그런 모래성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어차피 무너져버릴 모래성이기에 쌓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 모래성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별것이 없을 텐데 계속 쌓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누군가 제 모래성을 무너뜨리지나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짓궂은 친구가 와서 발로 허물어 버렸던 그 기억이 너무나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래성을 쌓는 것도 오직 제가 좋아서 한 것이고, 세상의 모든 모래성은 언젠간 다 허물어져 버리고 마니 그것에 너무 섭섭해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마 놀이터에서 실컷 모래성을 쌓으며 재미있게 놀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가 떨어져 저녁 하늘의 노을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 마음이 편했던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