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 섬이 있었습니다. 태양은 하루가 아쉬운 듯 서쪽 하늘에 노을을 펼쳐놓았습니다. 그와 더불어 바닷가의 물은 점점 힘을 잃은 듯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조금 지나자 섬과 해안 사이에 길이 나타났고,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 섬으로 향했습니다.
저도 사람들을 따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닷물로 가득했던 곳을 걸어서 섬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섬에 도착해 제가 있었던 바닷가를 바라보았습니다. 섬이었던 곳을 걸어서 올 수 있다는 것에 무언가를 얻은 듯 가슴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바닷가에는 수많은 섬이 있지만, 걸어서 올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까지 살면서 처음 경험해 본 것이니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날따라 바다와 섬과 수평선, 태양과 저녁노을, 바다 위를 날아다니기 갈매기, 함께 섬에 들어오기 위해 걸었던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아마 아름다움이란 흔하지 않은 것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살아가다 보면 흔치 않은 경험을 하곤 합니다. 그러한 경험이 삶의 아름다운 한 페이지를 채워나갈 때마다 감사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는 정말 아름다운 것들이 많을 터인데 그러한 것을 다 경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경험했던 그리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경험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 그것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돌이켜 생각해 보면 비록 경험하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린 것이지만 아직도 마음 깊숙한 곳에는 남아 있습니다.
평생 그것을 다시 경험하지 못하겠지만, 미련은 간직하려고 합니다. 미련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것마저 잃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라도 간직하려는 것은 아름다울 수 있었을 그 순간도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섬이지만 바닷물이 빠져 섬에 이르듯이 우리의 삶에서 비록 드문 경우겠지만 간절히 바라는 마음의 소망 중 이루어지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러한 마음이 더 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수백 개의 섬 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섬이 정말 몇 개 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소원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 소원이 그리 큰 것도 아니라면 한 번만이라도 이루어지면 안 되는 것일까요? 확률을 계산해 보면 차라리 소원을 가지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마음속에서 그것을 계속 바라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바닷물이 사라진 그 길을 건너 섬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그 가슴 벅찬 순간처럼,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섬을 둘러보며 제가 바라는 소원을 몇 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소원이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하나라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다시 섬을 나서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바닷물이 들어와 길을 덮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으로 가야 합니다. 다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간절한 소원을 그 섬에 남겨두고 길을 나섰습니다. 아름다웠던 시공간에 소원을 남겨놓는다면 조금이나마 그 소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커질지도 모르니까요.
질척한 바닷길이 걷기가 힘들었습니다. 섬을 향해 갈 때는 잘 몰랐는데 섬을 나오는 길에는 그것이 느껴졌습니다. 바닷가에 이르러 다시 섬을 바라보았습니다. 태양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섬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두운 밤에도 밤새도록 달빛은 그 섬을 비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