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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ug 20. 2021

오이디푸스의 운명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라이오스는 테바이의 왕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펠롭스의 아들 크리스포스가 미소년이었기에 그를 사랑하여 겁탈하였다. 이에 크리스포스는 마음의 깊은 상처를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아들을 잃은 펠롭스는 라이오스에게 나중에 라이오스가 왕이 되더라도 아들을 얻지 못할 것이며, 만약 아들을 낳게 되면 그 아들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리라는 저주를 퍼붓는다. 


  나중에 테바이의 왕이 된 라이오스는 아름다운 여인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 후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자식이 태어나지 못했다. 라이오스는 당시 신탁(흔히 제사장, 또는 주술가)을 담당한 곳에 찾아가 원인을 물어본 결과 그가 나중에 아들을 얻게 되기는 하는데 그 아들이 장차 아버지인 라이오스를 죽이고 그 아들이 자신의 어머니이자 라이오스 아내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해 준다. 


  그리고 얼마 뒤 이오카스테가 아이를 임신하였고 아들을 출산한다. 이에 라이오스는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그 신탁의 예언이 실현될 것이 두려워 이를 미리 막기 위해 아들의 발목을 뚫어 가죽끈으로 묶은 후 자신의 부하를 시켜 사람이 없는 산골짜기에 갖다 버리게 시킨다. 버려진 아이는 곧 죽을 운명이었으나, 주위의 양치는 목동에 의해 발견되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그리고 그 목동은 주위에 자식이 없는 부부에게 아이를 맡기게 되고 그 부부는 그 아이를 자신들의 자식인 것처럼 성실히 맡아 기른다. 그 아이는 잘 성장하였는데, 어느 날 청년이 되었을 때 주위 사람과 말다툼 끝에 자신은 버려진 아이였고 현재의 부모가 주워다 길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충격을 받아 집을 떠나 길을 가던 중 마차를 타고 가던 한 일행과 마주치는 데 마차를 타고 가던 이가 길을 비키라는 말에 절망한 마음이 화로 돌변하면서 그 마차 타고 가던 이와 시비하던 중 그를 살해하게 된다. 그 마차를 타고 가던 이는 다름 아닌 라이오스였다. 


  당시 라이오스가 다스리던 나라에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나타나 사람들을 무참히 괴롭혔는데 라이오스가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라이오스의 아내인 이오카스테의 친오빠가 섭정을 하게 되었고, 그는 그 스핑크스를 없애는 사람에게 왕위와 이오카스테를 왕비로 주겠다고 공언을 한다. 이에 라이오스의 아들은 그가 죽인 사람이 아버지인 것도 몰랐고, 왕비였던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였다는 사실도 모른 채 스핑크스와 대결을 벌여 이기게 된다. 이에 라이오스를 죽인 그 청년은 테바이의 왕이 되었고 자신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결혼을 해 왕비로 맞이하게 된다. 운명이었는지는 모르나 신탁의 예언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 사람이 바로 오이디푸스다. 왕위에 오른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와 사이에 딸 두 명과 아들 두 명을 낳는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에 충격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오이디푸스 또한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마음의 커다란 상처를 얻고 이오카스테의 브로치로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찔러 장님이 된다. 그리고 그와 자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 안티코네와 함께 평생 방랑의 길을 나선다. 다른 딸 한 명과 아들 두 명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아버지인 오이디푸스를 떠난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바로 여기서 이야기한 오이디푸스를 두고 한 말이다. 


  오이디푸스에 대한 이야기는 운명이 그토록 힘이 세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암시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은 신탁의 예언대로 운명이었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을 수 있다. 라이오스가 신탁의 예언을 알았다 하더라도 자기 아들의 발목을 뚫어 산에 갖다 버리지 않고 오이디푸스를 사랑으로 키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이디푸스도 자신을 키워 준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다 하더라도 절망을 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살았다면 어떠했을까? 우리의 삶은 운명도 있지만, 자신의 의지도 분명히 존재한다. 


  예전의 경우 이러한 운명이라는 것이 다 맞다고 생각하여 이를 인정하고 그저 따르는 결정론을 따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운명이나 결정론에 대해 철저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삶은 결코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만 하나의 인간은 그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의 한계가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삶은 오직 운명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나의 자유의지로 인해 내 마음대로 다 되는 것도 아니다. 운명과 나의 자유가 어느 정도 조합되어 나의 삶이 형성될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내가 어쩔 수 없는 운명은 거기에 저항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나의 자유의지로 해 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내 인생의 황금분할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 다가온 운명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바꾸지 못할 것에 대해 원망하고 불만을 제기해야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굳은 나의 자유의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보다 나은 나의 길을 창조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운명과 자신의 자유 의지를 어떻게 황금 분할해야 하는지는 오직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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