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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10. 2023

솔뫼 성지

솔뫼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의 탄생지이다. 김대건 신부의 집안은 그를 포함하여 4대가 순교했다. 그의 증조부인 김진후가 1814년에, 종조부 김종한이 1816년에, 부친 김제준이 1839년에 그리고 김대건이 1846년에 순교하였다.


  솔뫼가 있는 내포는 예부터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까지 들어와 포구를 이루어 배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새로운 문물을 전해주던 곳이다. 내포를 비롯하여 서해안 여러 지역은 중국으로부터 서학과 천주교가 일찍이 전해졌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내포의 선비들은 실학의 한 분파인 서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들은 서울의 실학자들과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천주교에 접하게 되었다. 


  김대건은 솔뫼성지가 있는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에서 1821년 태어났다. 이미 그의 증조부와 종조부가 순교한 상태였기에 집안의 가세는 심하게 기울었고, 언제 또 다른 박해가 있을지 몰라 그의 조부 김택현은 김대건이 어린 시절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의 산골로 이사했다.


  사실 김대건의 가문은 대대로 토지와 벼슬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의 10대조인 김희현은 아산 현감을 하였고, 9대조인 김의직은 임진왜란 당시 충청병마절도사까지 하면서 전훈을 세워 많은 토지가 있었다. 8대조인 김수완은 사헌부 감찰을 하였고 이때부터 그의 집안은 솔뫼에 거주한다.


  1784년 김대건의 백조부인 김종현과 조부 김택현이 서울의 김범우의 집에서 천주교 교리를 받고 입교하였다. 이어 증조부인 김진후도 입교하면서 가문이 천주교 신앙으로 귀의, 솔뫼를 신앙의 고장으로 만들었다.


  김대건은 16세 때인 1836년, 모방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뽑혀 최양업과 최방제와 더불어 마카오로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한다. 그는 상해에서 페레올 주교의 집전으로 신품을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가 된다. 공부를 마치고 1845년에 입국하여 선교활동을 활발히 하였고, 외국 선교사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노력하다 1846년 체포된다. 그리고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한다. 그가 조국에 돌아와 선교활동을 한지 겨우 1년 1개월 만이었다. 그는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올려졌다. 2005년 김대건 신부 기념관이 완공되었고,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솔뫼를 방문하여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1906년 합덕본당의 주임이었던 크렘프 신부는 김대건의 탄생지인 솔뫼를 성역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인근 토지를 매입하였고 1945년 빌리버 신부는 솔뫼에 김대건 복자비를 설립하였다. 이어 1973년부터 본격적인 솔뫼 성역화 사업이 시작되어 1982년 솔뫼 피정의 집을 건립하여 솔뫼성지를 순교자 신앙의 학교로 삼았다. 2004년 김대건 생가를 복원하였고 2005년에 기념관이 완공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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