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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n 21. 2023

다시 그곳에서

영원히 잊지 못하는 곳이 있다. 나의 삶과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된 그곳을 다시 찾아간다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느끼게 될지 모른다.


  송기원의 <다시 월문리에서>는 오랫동안 떠나온 어머니가 계셨던 곳을 다시 찾아가 예전에는 몰랐던 어머니에 대해, 나중에야 깨닫게 되는 이야기이다. 


  “나는 어억 하는 외마디 신음과 함께 마룻바닥의 햇살 더미 위에 나뒹굴었다. 눈물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슬픔이라든가 분노 따위의 감정도 없었다. 나는 다만 숨이 끊어질 듯한 고통으로 사지를 뒤틀었을 뿐이었다. 훗날 나는 그 고통을 바로 어머니의 한이 나에게 그런 형태로 나타났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딱 잘라서 그렇게 치부해 버리기에는 그때 나에게 왔던 생리적인 고통은 너무나 생생한 것이었다. 나는 이선배에게서 술잔을 받아 술을 친 다음에 허물어지듯이 엎드려 절을 드렸다. 그러고 나자 비로소 내 입술을 비틀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시든 잔디에 이마를 비비대며 울었다.”


  당시에는 몰랐다. 어머니가 무엇인지, 어머니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머니의 나에 대한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를 전혀 몰랐다. 


  마음도 어렸고, 생각도 어렸던 시절, 우리의 판단은 너무나 좁은 세계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더 이상 계시지 않는 곳에서 어머니에 대해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그때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두 눈에서 새롭게 눈물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울면서 시든 잡초 대궁이들을 헤치며 안마당을 지나 뒤울안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뒤울안이며 장독대 그리고 부뚜막이 내려앉아 무쇠솥이 거꾸로 뒤집혀 있는 부엌 따위를 둘러보며 나는 또다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결코 저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지 않았다. 어머니는 바로 내가 둘러보고 있는 안마당의 망초꽃이며 엉겅퀴, 쑥부쟁이 따위 잡초들의 시든 대궁에서 두 눈을 부릅뜬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마루 위에 나뒹구는 방문의 찢어진 창호지에서, 뒤울안에서, 장독대에서, 무쇠솥이 뒤집혀 있는 부엌에서 마디진 두 손을 갈퀴처럼 휘두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랬다. 어머니는 바로 내가 오는 순간을 위하여 이곳에서 중음신으로 떠돌며 살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안마당을 지나쳐 떨리는 손으로 어머니가 목을 매달았던 대문의 고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거기에 이마를 댄 채 오래오래 울었다.”


  자신의 한계에 갇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오직 자신만의 생각과 지식으로 모든 것을 판단했었다. 소중한 사람을 오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되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나만의 프레임에 갇힌 채 그 소중하고 아름다운 세월을 다 흘러버리고만 말았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라는 단어를 붙들고 그저 우는 것밖에는 없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세월, 잊어버린 시간을 울음으로밖에는 달랠 길이 없었다. 


  자신을 내려놓고, 나의 지식과 한계를 넘어서야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나간 세월에 대한 울음을 대신할 것은 앞으로 남아있는 시간을 예전과 같이 반복하지 않는 것밖에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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