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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ug 10. 2023

머무는 것, 떠나는 것

  이 세상에 우리 곁에 영원히 머무는 것은 없다. 머무는 것과 떠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어쩌면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무언가 다가왔다면, 그 무언가는 또 언젠가 떠나기 마련이다. 조용호의 <신천옹>은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머묾과 떠남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환경을 쉬 바꾸지 못하는 천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래된 인연이라고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익숙해지다 지겨워질 때쯤이면 사람이건 사물이건 대상의 뱃속까지 훤히 꿰뚫는 마당이어서 그리 큰 감흥이 없을 때도 많다. 다만, 그것들마저 없다면 절해고도의 수인 신세로, 내가 더 답답할 줄 뻔히 알기 때문에 끈을 놓지 못하고 살아가는 편이다. 그렇게 사람이든 직장이든 쉬 떠나지도 못하고, 새 사람을 제대로 사귀지도 못하면서 인생의 가운데 토막을 지나왔다. 이제는 새장의 문을 열어놓아도 밖으로 날아갈 줄 모르는, 퇴화된 날개 근육을 지닌 가여운 늙은 새일지도 모르겠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머무르기를 바라도 머무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오고 가는 것은 인연일 뿐, 나의 의지와도 그리 상관이 없다. 하지만 세월은 확실히 우리를 바꾸어 놓는다. 그것을 이제는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기 때문이다. 떠남과 머묾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에 그 모든 것에서 이제는 자유롭다. 


  “그동안 많은 인간들이 내 곁에 머무르다 떠나갔다. 의욕적으로 일하던 후배들도 조금 쓸 만하고 정을 붙일 만하면 영악하게 밥그릇이 큰 곳을 찾아 떠나갔다. 한동안은 뒤에 남는 게 갑갑하여 무조건 사표를 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제는 그마저도 익숙해져 심상한 풍경이 돼버린 듯하다. 그만큼 감성이 풍화됐고, 체념에 익숙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는 엉뚱하게도 주변 풍경들이 자꾸 내 발밑을 판다. 작별 인사도 없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밥집 때문에 적잖이 허전했다.”


  살아가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지만, 오래도록 그 인연이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누군가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떠나버리고, 누군가는 떠나지 않을 것 같은데도 훌쩍 떠나버리고 만다. 


  오래도록 함께하지 못할 것 같은데도 그 무언가에 붙들려 함께 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그것은 아마 인연을 넘어 숙명이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에 익숙해져야만 함을 느낀다. 세월이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음을 알기에 그렇다. 


  “알바트로스라는 새가 있어요. 그쪽 얘기를 들으니 그 새가 연상되네요. 겉모습은 천사처럼 우아하지만, 육지와 멀리 떨어진 먼바다에서 모진 풍파를 이겨내며 수개월, 때로는 몇 년씩이나 살아간대요. 지구상에서 바람이 가장 심한 지역이야말로 이 새들이 살기에 적당한 장소지요. 긴 날개를 펴고 바람을 타기만 하면 먼바다의 허공이 자기네들 집이 되거든요.”


  삶은 떠나는 것과 머무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음으로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게 되었으니까 온 것이고, 가게 되었으니까 간 것일 뿐이다.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내가 원한다 하더라도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너무나 많다. 


  날게 되었으면 최선으로 날아가면 되고, 어딘지는 모르나 땅에 내려앉았으면 그곳에서 머무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인연이 닿았기에 나에게 온 것이고, 인연이 다했기에 나로부터 떠나간 것일 뿐이다. 머무르는 것과 떠나는 것, 그것은 삶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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