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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Nov 06. 2023

사랑의 동시성

  암스테르담에서 남서쪽으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가면 델프트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곳은 유명한 도자기인 로얄 델프트의 본고장입니다.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이곳 델프트를 배경으로 17세기에 활동했던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 메르와 한 소녀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아버지는 시각장애인이고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어 가난했던 그리트(스칼렛 요한슨)는 화가 베르 메르(콜린 퍼스)의 하녀로 일하게 됩니다. 힘든 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던 그리트는 푸줏간 청년 피터(킬리언 머피)와도 친해지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베르 메르의 화실을 정리하던 그리트는 잠시 그의 모델이 되어 포즈를 취하는데, 이때 그리트는 베르 메르에게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베르 메르 또한 그녀의 신비한 분위기에 끌려 그녀를 모델로 세우려 했고 그녀가 미술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델을 하며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베르 메르에 대한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베르 메르 또한 그녀를 모델로 한 그림에 몰입을 하게 됩니다.


  어느 날 베르 메르는 그리트가 자신의 아내의 진주 귀걸이를 하고 모델을 하면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하는데, 그리트는 주인인 베르 메르 아내의 귀걸이를 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베르 메르는 아내 몰래 진주 귀걸이를 가져와 직접 그리트의 귀를 뚫어주고 진주 귀걸이를 한 그리트의 모습을 완성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베르 메르의 아내는 그리트를 집에서 쫓아내고 집으로 돌아온 그리트는 다시는 베르 메르에게 돌아가지 못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베르 메르 집안의 하녀가 그리트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는 데 그것은 베르 메르가 죽으면서 유언으로 남긴 진주 귀걸이였습니다.


  베르 메르는 그리트를 단순한 여인으로서의 사랑이 아닌 그림을 그릴 영감을 주는 뮤즈로서 그녀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녀가 위험에 빠졌을 때 직접 나서 그녀를 도와준 것은 그녀를 진심으로 아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베르 메르의 사랑은 지극히 순수했습니다. 아마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리트를 여성으로서 소유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트는 베르 메르와 피터를 동시에 사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트의 베르 메르에 대한 사랑은 예술과 관계된 정신적 사랑이었고 피터에 대한 사랑은 육체적이고 본능적인 사랑이었습니다.


  베르 메르는 그리트의 이러한 내면의 모습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그림에 정확하게 표현해 낼 수 있었습니다.


  아마 베르 메르가 허락했다면 그리트는 그를 남자로서 육체적인 사랑도 시도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리트는 베르 메르의 마음을 알고 있었고 그녀는 그 이상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리트가 모델을 하다 베르 메르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모델을 끝낸 후 피터에게 바로 달려가 그와 관계를 한 것을 보면 이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리트는 베르 메르에게 정신적 사랑에 빠졌고 모델을 하면서 그에 대한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참을 수 없었기에 그녀는 피터에게 달려가 이를 해소한 것이었습니다. 베르 메르는 예술가로서 그리트를 사랑했고 그리트는 예술가인 베르 메르와 피터를 동시에 사랑했던 것입니다. 


  베르 메르의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가치가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것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순한 예술적 사랑과 본능적 사랑의 동시성이 이 그림에 스며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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