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크 영웅전에 보면 피루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피루스는 지금의 그리스 북서쪽, 알바니아의 남쪽에 위치한 에피로스라는 작은 나라의 왕이었다. 그는 태생적으로 굉장히 용맹하여 자신은 아킬레스와 알렉산더의 뒤를 이어 언젠가는 그들만큼의 대제국을 건설하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친구인 시네아스에게 그리스와 로마를 정복하고 뒤를 이어 알렉산더처럼 아시아를 점령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자, 시네아스는 피루스에게 그러한 정복을 다 마치고 나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어본다. 이에 피루스는 할 일을 다 했으니 푹 쉬겠다고 답한다. 그러자 시네아스는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고 나서 어차피 쉴 거라면 자신은 아예 지금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계속 쉬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말한다.
피루스는 시네아스의 말에 아랑곳없이 자신의 길을 떠난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 로마를 상대로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른 후 승리를 얻는다. 로마제국을 상대로 승리를 얻기는 했지만, 그 또한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자신을 도와 전쟁의 승리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 수많은 부하와 병사들을 잃었고, 자신마저 커다란 부상을 입게 된다. 승리를 하기는 했지만 잃은 것도 너무나 막대해서 승리는 했지만 패배한 것 같은 그러한 느낌의 승리였다. 이후로 이러한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승리를 “피루스의 승리”라고 하기도 하고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고 말하기도 한다.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뜻이다. 전쟁에서 이긴 후 자신의 고향인 에피로스로 돌아온 피루스는 몇 년이 지난 후 사망하고 만다. 아시아까지 정복하겠다는 그의 꿈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끝나버리고 말았다.
에피로스는 사실 거대한 로마제국에 비하면 너무나 작고 힘도 약한 나라였다. 로마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그러한 나라가 아니었다. 피루스는 왜 자신의 고향을 떠나 거대한 제국인 로마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것일까? 그 전쟁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는데 그냥 조용히 자신의 왕국을 다스리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어차피 전쟁에서 돌아와 집에서 쉬어야 할 것인데, 처음부터 시네아스가 말한 것처럼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집에서 계속 쉬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피루스가 옳은 것일까? 시네아스가 옳은 것일까? 만일 피루스가 로마와의 전쟁에서 한번 만에 승리를 거두고 많은 것을 잃지 않았다면 그의 꿈대로 아시아의 정복이 가능했을까? 아니면 두 번의 전쟁에서 로마제국에 패했다면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시네아스의 말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적으로 볼 때 피루스가 사망하고 나서 그에 버금가는 용맹스러운 왕은 에피로스라는 나라에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에피로스는 로마제국에 의해 멸망되어 로마의 속국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현재는 그리스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에피로스의 역사에서 거대한 로마제국에게 승리를 거둔 것은 피루스가 유일했다.
시네아스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계속 쉬는 것이 어쩌면 더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 잃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피루스는 많은 것을 잃었다. 피루스의 길이 옳은 길이라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잃는 것이 없다면 얻는 것도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떠나지 않으면 만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무언가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판단이 다르겠지만, 지금 있는 곳을 떠나 길을 가다 보면 새로운 것을 만나게 되고, 그로 인해 잃는 것도 있고 내 자신의 한계도 알게 되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현재의 나는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수 있다. 우리의 삶에서 실패가 없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한낱 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실패 없는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한 승자는 있을 수 없다.
에디슨은 축전지를 발명했을 때 2만 5천 번 이상의 실험을 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이 계속 실패하는 에디슨에게 이런 말을 하며 위로를 전했다.
“2만 5천 번의 실패를 했으니, 너무 많이 속상하겠어요.”
하지만 에디슨은 이러한 사람들의 말에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다.
“저는 2만 5천 번의 실패를 한 것이 아니라, 축전지가 작동되지 않는 2만 5천 가지 방법을 알게 된 것이에요.”
결국 에디슨은 축전기의 발명을 이루어냈고, 그 뒤를 이어 백열전구까지 만들어 냈다. 그뿐만 아니라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수많은 기구는 에디슨의 손을 통해 대부분 가능해졌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 기구의 대부분의 부품은 에디슨의 손을 거친 후에 개선된 것들이다. 전기 문명의 시대는 에디슨의 발명품이 없었다면 훨씬 나중에야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에디슨의 수많은 시도가 이러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똑같은 일을 보고서도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 이루어내는 기적이 여기에 있다. 에디슨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학교 교육이 불가능한 아이라는 말을 들었고, 결국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어서 초등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2만 5천 번의 실패를 해 본 적이 있는가? 단 250번의 실패를 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왜 실패를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일까?
떠남은 만남이다. 실패를 만날 수도 있고 패배를 만날 수도 있고 승리를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떠남은 새로운 나와의 만남이다. 새로워진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 아는 만큼 세상은 달라진다. 경험해 본 만큼 다른 세상이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 인간은 어차피 백 년도 못 살고 죽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하게 집에서 잘 지내다가 죽어도 아무런 문제는 없다. 오히려 그것이 더 안락한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매일 떠나고 싶다. 지금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와 똑같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는 않을지 모르나, 내 자신만을 위해서라도 나는 오늘 또 길을 나서려 한다. 떠난 후 걸어가는 그 길에서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