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우연히 본 영화가 기억이 난다. 군대 갔다가 대학 졸업할 때쯤이었던 것 같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였는데 아마 브래드 피트의 초창기 영화가 아닐까 싶다. 영화에서 낚시하는 장면이 너무 멋있었고, 스케일이 크거나 드라마틱한 요소는 별로 없었지만 조용하고 잔잔한 영화였다. 그 영화는 그때 딱 한 번 보고 더 이상 본 적은 없다. 난 사실 영화나 드라마는 한 번 이상 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그 조용한 영화는 30년 정도가 지난 지금에도 기억이 나는 이유가 뭘까? 그동안 본 영화만 해도 수백 편은 될 텐데, 그중에 제목을 기억하고 있는 영화도 얼마 되지 않는데 그 영화가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유는 뭘까?
그 영화에 나오는 대자연이나 낚시하는 장면도 멋이 있었지만, 영화 제목은 항상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살아오면서 그 영화 제목이 생각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강물은 그저 흐른다. 아무 욕심 없이 그냥 흐른다. 산꼭대기부터 시작한 물은 수백 리 길을 거치면서 언젠가 바다에 이른다. 중간에 계곡에서 커다란 바윗돌을 만나면 부딪힌다. 그러면서 자신은 산산조각이 나며 깨지지만, 그래도 다시 모여 흐른다. 가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그냥 돌아서 흐른다. 가파른 절벽에 이르러 엄청난 높이에도 불구하고 그냥 떨어져 내린다. 그게 물이다. 그저 흘러가는 것, 그것이 물의 본성이다. 어떤 것을 만나고 자신이 깨어질지언정 싸우지 않는다. 자신을 가로막는 것이 있으면 그러려니 하고 그냥 돌아서 간다. 절벽이 있건, 뭐가 있건,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그냥 흐른다. 그러다 보니 바다에 이른다.
도덕경 8장에 비슷한 구절이 있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최상의 덕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여 다투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가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거처로는 땅을 좋다고 하고,
마음은 깊은 것을 좋다고 하고,
사귀는 데는 어진 것을 좋다고 하고,
말은 진실한 것을 좋다고 하고,
다스릴 때는 질서 있음을 좋아하고,
일할 때는 능력 있게 하고,
움직임에는 때에 맞음을 좋다고 한다.
오직 싸우지 않으니, 허물이 없다.
나는 요즘 점점 마음이 약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아무 힘도 없는 듯한 느낌이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이제 그냥 흐르는 세월에 나의 삶을 맡기고 싶다. 내가 부서지면 부서지는 대로, 굽어지면 굽어지는 대로, 떨어져야 하면 떨어지는 대로, 그저 그렇게 물처럼 살고 싶다.
“흐르는 강물처럼”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는 도박을 하다 결국 죽고 만다. 영화에서 그의 형은 아버지의 말을 잘 따르는 모범생이었지만, 동생이었던 브래드 피트는 아버지가 이해하기 힘든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브래드 피트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사랑했다. 그저 흘러가는 강물처럼 아들의 삶을 인정하고 세월을 함께 했다.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나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데 너무 부족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