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도 쓰임이니

by 지나온 시간들

대학교 1학년 때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 이해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른 세계에서 날아온 책 같았다. 내 책꽂이에는 30여 년 전에 산 그 책이 아직도 보관되어 있다. 누렇게 색이 변했지만, 애착이 많이 가는 책이다. 지금도 시간이 날 때 가끔씩 꺼내 다시 읽기도 한다. 한번 읽었다고 꼽아두는 책이 아니다.


호킹은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이 당연히 가지고 있었던 것이 없었다. 그는 말을 할 수도 없었고, 스스로 다닐 수도 없었으며, 수학을 계산하기 위해 연필을 사용해야 하는 손을 쓸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없음은 과학적 창의성의 근원이 되었다.


호킹은 21살 때 2년밖에 더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근육을 전혀 사용할 수 없는 루게릭병에 걸린 것이다. 당시에 이 질병은 불치의 병이었다. 이후로 그는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해 모든 것을 이론 물리학에 쏟아붓는다.


호킹의 천재성은 블랙홀은 빛을 포함한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는 이론 물리학계의 터부를 깼다. 그는 블랙홀도 복사에너지가 방출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주장하였다. 이를 “호킹 복사”라 한다. 게다가 그는 블랙홀에만 적용되는 특이점 이론(singularity theory)을 우주 전체에 응용하여 우주 전체가 특이점에서 탄생해야 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냈다. 그는 계산할 수 있는 손을 쓸 수 없었기에 오직 뇌 신경만을 이용한 암산으로 그것을 증명해 냈다. 가장 난해하고 계산하기 힘든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장론을 응용하여 이를 보란 듯이 해냈다.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이다.


호킹의 평생 동료였던 로저 펜로즈는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호킹의 업적은 펜로즈 못지않았다. 호킹은 2018년에 사망하였다. 만약 그가 살아있었다면 펜로즈와 함께 노벨상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호킹의 <시간의 역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중력의 법칙은 우주가 시간적으로 불변한다는 극히 최근까지 고집되었던 생각과 양립하지 않는다. 즉 중력이 언제나 인력이라는 사실 때문에 우주는 팽창하거나 수축해야만 한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과거에 밀도가 무한히 큰 상태가 필연적으로 있었으며, 이는 사실상 시간의 시초에 해당한다. 이와 유사하게 만약 우주 전체가 다시 수축한다면, 미래에 또 하나의 밀도 무한대의 상태가 있고 시간의 종말을 이루게 된다. 우주 전체가 검은 구멍을 만드는 곳에는 특이성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특이성은 그 검은 구멍으로 빠져드는 사람에게 시간의 종말이 될 것이다. 대폭발이나 다른 특이성에서는 모든 법칙이 깨어지기 때문에, 신은 거기서 무엇이 일어날 것인지 또 우주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를 정하는 데 완전한 자유를 그래도 가질 것이다.” 이는 우주의 시작과 끝도 없다는 아이디어다. 이것이 바로 시간의 역사의 핵심이다.


도덕경 11장은


三十輻共一,

當其無, 有車之用,

挻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鑿戶牖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한 바퀴통에 꽂혀 있다.

그 바퀴 통의 빈 것 때문에 수레의 효용이 있는 것이다.

찰흙을 빚어서 그릇을 만든다.

그 가운데를 비게 해야 그릇으로서의 쓸모가 있다.

문과 창을 뚫어서 방을 만든다.

그 방안이 비어 있어야 방으로서의 쓸모가 있다.

그러므로 이로임이 된다는 것은 없음의 쓰임이 있기 때문이다.

노자는 없음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 없음은 곧 쓰임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릇이 가운데 비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다른 것을 담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지려 한다. 비어 있는 것이 싫어 완전히 채우려 노력한다. 하지만 무언가 없다는 것은 더 큰 것을 위한 쓰임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하지 못한다. 그 없음이 어떻게 쓰일지는 신의 영역일 뿐이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 너무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없음이 싫어 더 채우려다가 어쩌면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21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철학에 남겨진 오직 한 가지 일이란 언어의 분석뿐이다.” 물론 이 말은 언어의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긴 하나,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언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계 없는 것은 이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 너머의 더 큰 세계는 언어의 없음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호킹의 <시간의 역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실제로 완전한 이론을 발견하게 되면, 이것은 머지않아서 누구에게나 원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과학자, 철학자, 일반 사람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인간과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란 문제를 논하는 데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 답을 찾아냈다면 그것은 인간의 이성의 최종적인 승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호킹의 신과 대화하고 싶어 했다. 블랙홀에서 그리고 우주의 시작과 진화에서 그는 신의 영역을 보고 싶어 했다. 스티븐 호킹의 없음은 극도의 쓰임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높이 날았다. 그는 없음의 날갯짓으로 신과 대화할 수 있는 영역으로 가장 높이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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