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없다

by 지나온 시간들

주위에서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많이 듣곤 한다. 줏대가 없다는 얘기도 듣는다. 어떤 주장을 잘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들이나 동료들하고 얘기할 때는 사실 다 옳은 느낌이 든다. 양쪽 주장이 틀리는데도 얘기를 듣다 보면 양쪽이 다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듣는 것 같다. 나는 뉴스를 거의 시청하지 않는다. 세상 돌아가는 데 관심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재미가 없다.


사람들을 만날 때도 본인의 주장이 강한 사람은 만나기가 부담스럽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 노력하는 사람도 왠지 불편하다. 그냥 편한 얘기나 하고 재미있는 얘기하는 사람하고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


나는 삶에는 답이 없다고 확신한다. 나부터도 그렇다. 오래전에 옳다고 맞다고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 보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곤 한다. 당시에는 정답이라 생각해서 그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살았는데 지나고 와서 보니 잘못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도 답이 아닐 수 있다. 시간이 지나서 얼마 후에 보면 다른 것이 답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과 정치나 종교나 그런 얘기 하는 것을 나는 피하곤 한다. 물론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주장하는 것은 싫어한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나는 다 도토리 키재기 정도인 듯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친구들과 식당에 가면 사실 나는 메뉴판도 필요 없다. 친구들이 뭐 먹을지 물어보면 그냥 아무거나 먹는다고 한다. 그러면 친구들이 아무거나가 뭐냐고 한다. 그런 메뉴는 없다고, 그럼 식당 사장님한테 “사장님, 오늘 맛있는 거 뭐예요?” 하고 물어보고 그냥 그거 달라고 한다. 그러면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된다. 나한테는 사실 맛없는 음식은 없지만.


물건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마트에 가서 무엇을 사려고 하면 고르는데 10초도 안 걸린다. 그냥 딱 보고 산다. 그리고 사용해 보면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는 차이가 많을지 모르지만.


이발을 하러 가서도 미용실 사장님한테 “이쁘게 깎아주세요.”하고 그냥 앉아서 눈을 감고 잔다. 다 깎고 나면 이쁘다. 머리를 어떻게 자르건 나를 쳐다보는 사람도 없는데 아무 상관이 없다.


나의 우유부단함도 답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엔 우유부단하지 않았다. 그런데 갈수록 더 우유부단 해지는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살아가는 것 자체가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아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도덕경 2장은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천하가 다 미가 미임을 알지만, 이는 추함일 뿐이고,

다 선이 선임을 알지만, 이는 불선이다.

그러므로 있고 없음이 서로 생기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루고,

길고 짧음은 서로 비교되고,

높고 낮음은 서로 기울고,

음성은 서로 화하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이런 관계로 성인은 무위의 일에 몸을 두고 무언의 가르침을 행한다.


노자는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의 편 가르기는 의미가 없다고 한다.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어떤 것이 아름답지 않은 것일까? 어떤 것이 선이며 어떤 것이 악일까? 어느 당이 옳고 어느 당이 틀렸을까? 내가 항상 옳고 다른 사람은 항상 틀린 걸까? 아니면 내가 틀리고 다른 사람이 옳은 걸까?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다 의미가 있다. 서로 상생해야 한다. 배척은 몰락을 낳는다. 비록 상대가 부족하더라도 품고 안아줘야 한다. 내가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는 사람이 나의 사람이다. 이 지구 상에 있는 그 어떤 존재도 완벽한 것은 없다. 부족하기에 서로 채워가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인간일 뿐이다. 선하지 않은 것이 있기에 그를 바탕으로 더욱 선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선하지 않은 것도 언젠가는 선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자연의 섭리는 그럴 것이라고 노자는 주장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어려운 시절이 너무 길었다. 어려운 시절이 길었기에 좋은 시절도 오래되기를 바라고 싶다. 좋은 시절 중에도 어려운 시절이 또 찾아오곤 한다. 하지만 어려운 시절을 버티어왔기에 그리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이제 아무 행함도 없이 살아가고자 한다. 답이 없기에 대충 살아갈 것이다.


존재는 어찌 보면 의미다. 의미는 살아있음이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써 나의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추구가 아니다. 단순한 어떠한 것을 하는 것이다. 내가 있기에 그냥 하는 것이다. 즉, 나만 있으면 된다. 다른 것은 아무 필요 없다. 다른 것을 추구하게 되면서 나의 있음을 잃게 된다. 거기서 모든 아픔과 고통이 따른다. 그것을 버려야 진정한 나를 회복할 수 있다.


삶은 있음으로 만족해야 하는데 나부터 그것을 못 한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은 공이다. 즉, 없음이다. 좋아하고 싫어함이 생김에 공이 사라진다. 아무 의미 없는 공을 추구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로부터 나를 찾을 수 없게 된다.


대학교 1학년 때 에리히 프롬의 소유나 존재냐(To have or To be)를 읽었다. 모든 것을 소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제까지 많은 것을 소유하려 노력해 온 내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어떤 것을 소유하려는 순간 발전은 없다. 거기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소유하지 않아야 더 좋은 방향으로 되어갈 수 있다. 소유는 욕심에 사로잡혀 살아갈 수밖에 없고, 존재는 살아있음의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소유는 자족이란 단어를 없앤다. 그러기에 다툼만 있을 뿐 평안은 없다.


이 세상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 자신 외에는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다. 자식도 내 것이 아니다. 가족도 내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자식이나 가족은 내 마음대로 절대 안 된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되게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냥 다 내버려 두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 한다. 그러기에 아픔이 온다. 자신 스스로 만들어 낸 아픔인데도 다른 데서 그 아픔의 원인을 찾는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을 그냥 지켜보기만 하고, 내버려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노력하고 연습해야 한다.


도덕경 2장의 후반부에는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不去.


만물이 일어나도 막지 않고, 생겨도 갖지 않으며,

어떤 일을 되게 하면서도 의지하지 않고,

공을 이루어도 그곳에 거하지 않는다.

다만 그곳에 거하지 않으니, 이로써 사라지지도 않는다.


나는 언제부턴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기로 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버릴 수는 없기에 하나하나씩 버리기로 했다. 그럴 용기가 이제 조금씩 생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버릴 것이다. 나의 마음부터 비우려 한다. 소유하려는 마음, 어떤 것에 집착하려는 욕심부터 버리려 한다. 좋아함도 소유하지 않고, 그냥 좋아하려 한다. 사랑도 소유하지 않고, 그냥 사랑하려 한다. 나의 삶도 소유하지 않고, 그냥 살아가려 한다. 나는 그냥 여기 지금 있으면 된다.


나는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으려 한다. 머무르고자 할 때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항상 떠나려 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야 머무르지 않을 수 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가기가 힘들다. 이전에 가보지 않을 곳을 가야 하지 않겠는가?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그곳으로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내 것이 없을수록 떠나기는 쉬울 것이다. 버리고 떠나야 한다. 내 것은 없기에. 내 것은 하나도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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