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인연은 삶을 비틀고

by 지나온 시간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을 만난다. 그러한 인연의 돌고 돌음이 우리의 삶을 굴곡지게 하기도 하고 비틀어 버리기도 한다. 삶은 그리 녹녹하지 않으며, 운명을 저항할 힘이 우리에게는 그리 많지 않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 말한다면 그는 아직 삶을 진정으로 겪지 않았기에 하는 말은 아닐까?


김원일의 소설 <바라암>은 우리 삶의 비틀린 인연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한국 전쟁 중 바라암의 법담 스님 앞에 점례는 고아로 맡겨진다. 절에서 곱게 잘 자라던 점례는 어느덧 성숙한 여인이 되었고 바라암 근처 귀래천을 건너 읍내를 가끔 다녔다.


귀래천을 건너려면 장사공의 배를 타야 했고, 장사공의 아내가 읍내에서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던 어느 여름날 장사공은 자신의 집에서 잠시 점례가 옷을 벗고 씻는 것을 보고 순간의 정욕을 참지 못한다. 이 일로 인해 점례는 남자를 알게 된다. 그 후 점례는 법담 스님을 떠나 환속을 한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던 점례는 미군 부대 근처에서 양공주가 되고 머리가 노랗고 푸른색의 지수를 출산한다. 혼자 힘으로 혼혈아를 키울 수 없었던 점례는 바라암으로 와 법담 스님에게 지수를 맡긴다.


“시님, 다시 오게 될는지, 증말 지가 다시 바라암을 찾게 될는지 모르겄이유. 아니, 이애를 찾어 꼭 다시 오게 될 끼유. 부디 잘 살펴주시유. 지는 보살도 못 되고 험한 인생 베랑길로 떨어지고 말었지만 저애만은 큰 덕을 깨치게 자비를 베풀어주시유.”


지수는 법담스님 밑에서 청년이 될 때까지 잘 자랐지만, 운명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지수가 귀래천으로 가던 중 동네 구장은 지수와 동행하고자 지수를 자신의 집으로 잠시 불러들인다. 하지만 그 집안에는 두 명의 술집 여인들이 구장과 술을 먹던 중이었다. 방에 들어온 지수는 그곳에서 여인이라는 존재를 느끼게 된다. 그 일 이후 귀래천을 건네주는 장사공의 딸 봉녀와 지수는 젊은 혈기를 누르지 못한 채 사랑을 하게 된다.


“법담 스님은 대답 없이 지수를 내다본다. 걱정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탄식하고, 번민하는 상좌의 고통을, 그 고통의 근원을 일찍 제하지 못한 자신의 박덕을 그는 탄한다. 속세의 적잖은 사람을 만나왔지만 그 연을 끝까지 잡아매지 못했음을 한한다. 설계가 모자라 일흔이 넘도록 상좌 하나조차 변변히 거느리지 못한 우매함을 책한다.”


법담 스님은 지수의 어미 점례처럼 지수도 그의 어미의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어쩌지 못했다. 거기서부터 지수와 봉녀의 어긋난 인연의 아픔이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지수의 어미 점례처럼 지수도 바라암을 떠난다.


“지수가 얼굴을 드는데 깊게 박힌 눈에 눈물이 가득 찼다. 그는 다시 머리를 떨어뜨린다. 흐느낌으로 등줄기가 떨린다. 법담 스님은 지수 등을 내려다본다. 점례의 피를 받아, 그 피의 준동질이 그를 이 암자에 묶어두지 못하게 함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태어나기 전이 무엇이며, 태어난 뒤가 무엇이며, 죽은 뒤 무엇이 될 것임을 모름이 인간이거늘, 그의 떠남이, 그 떠남의 결과가 무엇을 얻게 될 것임을 어찌 알랴. 그러나 법담 스님은 지수가 바라암으로 다시 오게 되었을 때 자기가 현세에 있지 않음을 내다본다.”


지수가 떠난 후 봉녀는 지수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되고 지수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장사공은 봉녀의 아이를 없애려 하지만, 운명은 그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봉녀는 지수의 푸른 눈을 가진 지수의 아이를 낳았고 이제나저제나 지수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세월이 흘러도 지수는 돌아오지 않고, 장사공은 딸인 봉녀를 동네 재산께나 있는 상처한 범아재비에게 후처로 시집을 보낸다. 봉녀는 지수의 아이를 범아재비에게 데려갈 수가 없어 지수의 어미 점례가 지수를 스님께 맡기듯, 자신의 아이를 법담 스님께 맡긴다.


“시님, 지아비 귀래천 찾아 은젠가 반드시 올 티니껜 그때까지 그분 키웠듯 우리 애 잘 거둬줘유.”

한국전쟁으로 법담 스님에게 맡겨진 부모 잃은 점례, 점례와 장사공의 동침, 점례의 환속과 양공주 생활 그리고 지수의 출산, 지수와 봉녀, 지수의 환속, 그리고 봉녀와 범아재비의 결혼, 다시 법담 스님에게 맡겨진 봉녀와 지수의 아이.


삶의 인연들은 이렇게 어긋나 그들의 인생을 모두 다 비틀어 버렸다. 이러한 일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다만 그것을 우리는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자신의 욕심을 누르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연은 더욱 어긋나게 될 뿐이다. 그 이후의 아픔이 우리의 인생을 더욱 슬프게 만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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