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는 자신의 학문적인 목표를 뚜렷이 하여 당시 조선 학계의 진로를 제시하였다. 그는 학문과 시, 서, 화의 예술 세계를 통합하여 지성과 감성이 조화되는 학예일치를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
당시는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기였기에 그가 이를 비판하는 바람에 두 번의 귀양살이를 하는 등의 정치적인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그는 자신이 목표로 한 학문적 경지를 위하여 유배지에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그는 24살 되는 해 청나라 연경에 가서 옹방강, 완원과 사제의 인연을 맺는다. 추사는 이후 왕희지, 구양순의 정법 서체 외에도 한나라 비석에 새겨진 예서체를 알게 되었고, 이를 연구하여 해서에 응용하였다. 추사는 1840년부터 약 8년 동안의 제주도 유배 생활 중 자신만의 독특한 필체인 추사체를 만들어냈다. 어쩌면 억울하게 귀양살이를 하는 것일 수 있었지만,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하에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를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았다. 굵고 가늘기의 차이가 심한 필획, 각이 지고 비틀어진 듯한 조형미, 부조화스러운 듯하면서도 조화로움, 획과 선으로 이어지는 공간 구성에 의한 추상이 추사체의 특징이다. 그는 또한 진경산수에 대응하여 이념의 미학을 추구하는 문인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제주도 유배 당시 제자인 이상적은 스승인 추사를 위해 청나라와 제주를 오가면서 애를 썼는데 추사가 이상적의 노고에 고마움을 느껴 1844년에 그린 그림이 바로 세한도이다.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추운 겨울이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게 남아 있음을 안다)”라는 글이 쓰여져 있는 이 그림은 추운 겨울 소나무와 잣나무 네 그루가 적막함 속에서 초가 한 채와 고고하게 서 있는 모습으로 국보 제180호이다. 이 세한도에서 추사가 평생을 목표로 지향한 학예일치의 정점을 볼 수 있다.
맹자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君子深造之以道(군자심조지이도)
欲基自得之也(욕기자득지야)
自得之則居之安(자득지즉거지안)”
이는 “군자가 원칙과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득의 경지에 이르기 위함이며, 자득의 경지에 이르면 사는 것이 안정되고 편안해진다”라는 뜻이다. 추사는 자득의 경지에 이르렀기에 안동 김씨라는 커다란 외부의 풍파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할 수 있었다.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꼭 하나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위해 외부의 어떤 압력이나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끝까지 그 목표를 위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는 것일까? 무언가 하나라도 이루기 위해 오늘을 의미 있게 보내고 있는 것일까? 무슨 일이 나에게 다가와도 그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오늘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