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행복이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커다란 것을 위해 지금을 잃지 않으려 한다. 오늘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행복을 기다리지 않고 나 스스로 만들어 갈 생각이다.
나는 왜 행복이 무엇인지를 잘 몰랐던 것일까? 왜 행복을 파랑새처럼 생각해서 찾으러 돌아다니기만 했던 것일까? 여기에 있는 줄도 모르고 왜 그리 많은 곳을 오래도록 헤매고 다녔을까? 모든 것이 나로 말미암음을 왜 그다지도 몰랐던 것일까?
중국 송나라의 邵康節(소강절)이라는 사람이 쓴 시가 있다.
“月到天心處(월도천심처)
風來水面時(풍래수면시)
一般淸意味(일반청의미)
料得少知人(료득소지인)”
“달은 하늘 깊은 곳에 이르러 새벽을 달리는데
어디선가 바람은 불어와 물 위를 스쳐가네
너무나 사소하지만 일반적이고 맑고 의미 있는 것들
아무리 헤아려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아주 적네”
이번 여름이 많이 더웠는지 그리 덥지 않았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나에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새벽에 반팔을 입고 나갔다가 날씨가 선선해진 것을 느껴 가을이 벌써 왔음을 이제야 느낀다.
삶은 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삶은 잔인하다. 그런데 나는 살아가고 있고 또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도 행복해질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선선해진 아침 바람에도 행복함을 느낀다. 예전엔 무감각했다. 계절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 아침 바람을 느낄 수 있고, 저녁엔 밤하늘도 볼 수 있다. 그렇게 소소한 행복이 나에게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저녁에 잠깐 나갔다가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다. 바람도 선선해 가을이 이제 조금씩 깊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책상에 앉아 시 한 편을 써봤다.
<오늘 그리고 내일>
오늘을 잘라내
내일을 여는 이유는
오늘의 아픔이
내일까지가 아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접어
내일을 여는 이유는
오늘의 슬픔이
더 이상 계속되기를
원하지 않아서입니다.
내일을 기대하는 것은
오늘 그런 아픔과 슬픔이
영원히 끝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어떤 일이 다가와도 난 이제 행복할 자신이 생겼다. 나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내가 하지 못하면 아무도 나의 행복을 책임져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삶은 그렇게 가을과 더불어 여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