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 일으키며

by 지나온 시간들

삶은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뜻을 전부 이루며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공을 했을 때의 순간이 아니라 그러지 못했을 경우이다. 그 순간을 이겨내는 자가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강하거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일은 많은 것이 조합이 되어 다 맞아야 하지만 그러한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그만 절망하여 포기한다면 그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희망을 잃지 않기에.


중국 전국시대에 태어났던 항우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삼촌의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삼촌이 살인을 저지르는 바람에 삼촌과 함께 고향에서 도망쳐 현재의 쑤저우에 가서 숨어 산다. 이때 진나라 시황제의 거대한 행차를 보고 자신도 그와 같이 되고자 마음을 먹게 된다. 진나라의 압제에 대항하여 전국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나자 항우도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그의 세력을 키워나간다. 워낙 힘이 장사였고 무예가 출중하였기에 전국의 내노라하는 무사들이 항우 밑으로 몰려들게 되면서 항우는 엄청난 세력을 형성한다.


항우는 커진 자신의 세력으로 진나라 장한의 군사 및 정예병을 격퇴시켰고 그 이후 연전연승, 시황제의 무덤을 파괴한다. 유방과의 첫 전투에서 그를 물리치고 진나라의 마지막 왕 자영을 죽이며 진나라를 멸망시킨다.

그리고 최고의 권좌에 오르며 “서초패왕(西楚霸王)”이 된다. 유방은 후를 도모하며 항우에게 사죄하며 목숨을 구걸한다. 승리에 도취된 항우는 잠룡이었던 유방을 놓아주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승리의 순간만을 즐긴 것이다. 유방은 물러나며 다시 항우에게 돌아올 것을 마음으로 다짐한다.


항우에게 패했던 당시 유방의 군사력은 항우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유방은 비록 적은 세력이었지만 후에 항우의 부하 세력까지 포섭하고 주위의 모든 세력과 연합한 후 항우와 전투를 벌이게 된다. 역대 적과의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항우였지만, 결국 유방의 명장 한신에게 “해하(垓下)”에서 고립되며 포위되고 만다. 항우는 유방하고 달리 스스로 절망하며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우희(虞姬)와 헤어지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를 가리켜 “패왕별희(霸王別熙)”라 한다.


후에 항우를 두고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두목(杜牧)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짓는다.

勝敗不可兵家期

包羞忍恥是南兒

江東子弟多才俊

捲土重來未可知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에서도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가슴에 품고 치욕을 참는 것이 진정한 남자다

강동의 젊은이 중에 준걸이 많은데

흙먼지 일으키며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을 왜 알지 못하는가?


여기서 “捲土重來(권토중래)”란 비록 처음엔 실패하였지만,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돌아오겠다는 뜻이다.

항우는 유방에 비해 모든 면에서 우세했다. 하지만 승리에 취해 그 이후를 대비하지 못했다. 항우는 자신과 함께 온갖 전투를 함께 한 부하들에게 영광을 공유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이에 그의 부하들은 유방의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순간적으로 결정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유방과의 해하의 전투에서 패한 후 모든 것을 잃은 생각에 절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던 것이다.


유방은 달랐다. 비록 자신의 세력이 항우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고 훗날을 생각하며 항우에게 사죄한다. 지방에 돌아가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갔고,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유방은 흙먼지는 일으키며 항우에게 돌아와 패배를 갚아준다. 하지만 항우는 “권토중래”할 생각 없이 패한 그 자리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이다. 당시 항우의 나이 불과 31살이었다. 항우는 충분히 재기할 수 있었다. 그도 “권토중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삶에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수치와 부끄러움은 잠시일 뿐이다. 그러한 것을 참고 극복하는 것이 진정으로 강한 자이다. 흙먼지 일으키며 돌아올 생각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언젠가는 생긴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권토중래하려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미래는 완전히 달라진다. 사업을 하다 시절이 좋지 않아 망할 수도 있다. 그 자리에서 절망한다면 그것으로 끝나고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희망은 있게 마련이다. 절망을 벗어나 권토중래하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그 어떤 절망은 오히려 우리가 더 힘을 키울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가 되는 것이다.

그대 흙먼지 일으키며 돌아올 날이 있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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