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을 하다 보면 수시로 어려운 문제를 풀 수밖에 없게 된다. 석박사 과정 때 듣는 수업 중에는 상당히 어려운 과목들이 많았다. 양자장론, 일반상대성이론 등은 한 문제를 푸는데도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어떤 문제는 한 문제 해결하는데 며칠씩 걸리기도 했다. 그런 경우는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계속 생각해야 했다. 책상에서 뿐만 아니라 밥 먹으면서 걸어가면서 화장실에서도 그 문제를 계속 머리속으로 생각하게 된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잠잘 때 그 문제가 꿈속에서도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꿈에서 수식이 막 떠오르며 꿈속에서 계산을 암산으로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 꿈속에서 수식계산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무의식으로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무슨 메커니즘으로 그런 일이 이루어지는 나도 전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때 느끼는 희열과 환희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런 것이 몰입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 한 문제를 풀기 위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 하고 나의 모든 에너지는 그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박사를 마치고 논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의 논문을 쓰기 위해 수십 편의 다른 논문들을 읽어보고 계산하고 맞추어보고 결론을 내리고 논문을 쓰기 시작해서 저널에 제출하고 나면 그때 느끼는 성취감은 남다르다. 이 모든 것이 정말로 재밌고 즐거운 일이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은 몰입과 관계된 우리 삶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다.
"몰입은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을 표현하는 말이다"
몰입은 집중이다. 모든 것을 잊는다. 그 순간 나 자신과 그 일만 세상에 존재할 뿐이다. 황홀한 순간이다. 그 순간을 결코 잃고 싶지 않을 정도다.
"몰입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극복하는데 한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중략) 보통 사람은 하루가 불안과 권태로 가득하지만 몰입 경험은 이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강렬한 삶을 선사한다"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나의 가치가 인정된다. 살아가고 싶은 의미가 부여된다. 내가 무언가른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의 극치다. 나의 무아를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즐겁다.
"명확한 목표가 주어져 있고, 활동의 효과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과제의 난이도와 실력이 알맞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사람은 어떤 활동에서도 몰입을 맞보면서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
몰입은 삶에 대한 도전이다. 나의 잠재력이 어디까지 가능할지 알려준다. 나의 능력의 한계치를 느낄 수 있다. 그로 인해 나의 삶의 순간이 의미 있어진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쓰는 요령을 모르면 삶의 질은 올라가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이 어떤 목표 하나에 집중할 때 몸까지도 더 좋아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어떤 문제에 몰입하여 그것을 해결하고 나면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정신마저 상쾌해진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의 인생을 긍정하게 만든다. 그래서 몰입은 삶의 환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