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고난은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만든다. 나약했던 나의 내면이 고난과 고통을 겪으면서 강한 내면의 자아를 가지게 된다. 다른 이를 의지하고 기대했던 과거를 버리고 독립적인 진정한 자아로 성장하게 된다.
이제까지 믿어 왔던 가치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삶의 허무함이 몰려올 수는 있지만, 이것이 진정으로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이다.
삶이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음을, 내가 믿어왔던 그 모든 것이 의미 없었음을 알게 된 순간, 그동안 지나온 시간들의 허무함이 밀려올지 모르나 그것을 극복해낸다면 새로운 세계로의 눈을 뜨게 될 수 있다.
“사실상 모든 위대한 성장은 거대한 분해와 소멸을 동시에 수반한다. 고통, 몰락의 징후는 거대한 전진의 시대에 속한다. 인류의 생산적이고 강력한 모든 운동은 동시에 니힐리스틱한 운동을 창출해 왔다. 염세주의의 극한적인 형태인 본래적인 니힐리즘의 출현은 경우에 따라서는 결정적이고 가장 본질적인 성장, 즉 새로운 존재 상태에로의 이행이 될 수 있다. (힘에의 의지, 니체)”
우리의 삶은 원래 없음의 삶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존재했고, 미래의 어느 순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다시 없음의 세계로 가야 한다.
그러기에 삶은 무이다. 우리의 존재 자체도 무이다. 잠시 시간의 순간에 서 있을 뿐이다. 많은 것을 기대할 필요도 많은 욕심을 부릴 필요도 없는 것이 당연한 삶의 과정이다.
이러한 허무의 세계가 나에게는 그동안 살아왔던 시간들에게 있어서는 고난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이러한 경험을 계기로 우리는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게 될 수 있다.
그러한 자아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나약하고 누군가를 기대하고 무엇에 의존하는 그러한 자아를 벗어 버리게 된다.
고난이 나를 바꾸게 만든다. 작고 힘없던 자아는 더 이상 나의 모습이 아니며 앞으로 어떠한 일이 나에게 다가오더라도 아무런 내면의 동요 없이 꿋꿋이 나의 길을 홀로 가기에 충분하게 된다.
이제 나의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확실히 이해하고, 보다 나은 삶의 모습을 가꾸어 나갈 수 있는 거듭난 자아로 주어진 나머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것으로 족함을 충분히 알고 있고, 그동안 생각해 왔던 나의 과거의 세계와 단절할 수 있다.
커다란 고난을 극복하였고, 거기서 새로운 나를 만났으며, 니힐리즘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에 이제는 더 이상 그 어떤 일이나 사람에 의존하지 않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과거의 것은 다 지나갔고 이제 새로운 자아의 모습으로 더 나은 자아의 모습으로 보다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에 충분하다. 그것이 바로 니힐리즘의 진정한 의미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