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정도에서 삶의 차이가 난다. 삶이 야망의 노예가 되는 순간 인간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우리가 야망에 사로 잡혔을 때 어떻게 변할 수 있고,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이 어느 정도까지 파멸에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맥베스 : 두 가지는 맞았다. 왕위를 건 웅장한 무대의 멋진 서막이랄까. 이 이상한 유혹은 불길한 징조도 좋은 조짐도 아니다. 만일 그것이 불길한 징조라면 먼저 진실을 보여 미래의 성공을 보증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코더 영주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조짐이라면, 왜 내가 그런 유혹에 빠지는 걸까? 그 무서운 환상에 머리칼이 곤두서고, 안정된 내 심장이 갈빗대를 두드리며, 평소의 내 마음이 아니잖는가? 마음속 공포에 비한다면 눈앞의 불안쯤은 문제도 아니다. 아직은 공상에 불과한데도 살인이란 생각은 내 약한 인간성을 왜 이리 뒤흔드는지, 몸과 마음의 기능은 망상 때문에 마비되고, 환상만이 눈앞에 보이는구나.”
맥베스는 코더 영주로 만족해야 했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라는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야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한 단계만 더 올라가면 왕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야망은 무섭다. 인간이 사람의 탈을 쓴 어떠한 존재로도 변해 버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맥베스 : 왕이 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나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두려운 것은 뱅코우다. 그의 왕자다운 성격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그는 몹시 대담하다. 그리고 그 대담한 마음에 자기 용기를 안전하게 행동에 옮기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뱅코우뿐이다. 그의 곁에서는 내 수호신이 맥을 못 추는 것 같다. 안토니우스의 수호신이 카이사르 앞에서 그랬다는데, 그것과 꼭 같다. 마녀들이 처음 나를 왕이라 불렀을 때, 그는 그들을 꾸짖고 자기에게도 말을 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그들은 예언자인 양 그를 역대 제왕의 아버지라 이름 붙였다. 나의 머리에는 열매 없는 왕관을 씌워주고 손에는 불모의 홀을 쥐어주었으니, 이것들은 결국 나의 아들이 아닌 남의 자손에 빼앗기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나는 뱅코우의 자손들을 위하여 인자한 던컨 왕을 죽인 셈이 아닌가!”
살인으로 왕위를 차지한 맥베스는 자신도 그러한 운명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로 인해 그는 더욱 끔찍한 짓을 저지르게 되고 마침내 정신이 이상해진 채로 폭군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인간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의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가 그 변화의 방향을 결정한다. 젊은 시절 맥베스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내면 속에 야망과 탐욕이 자리 잡으면서 그는 폭군으로 정신병자로 치닫게 되었다. 그는 힘들게 얻었던 모든 것을 잃었고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말았다.
현재 우리의 내면에는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것이 내 안에 살고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일까? 그 내면의 자아가 나의 삶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 갈지 우리는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