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성향은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선한 사람이 언제든 악한 인간으로 될 수도 있고 악했던 사람이 선한 쪽으로 변할 수 있는지이다. 선과 악이 대결할 경우 선이 항상 이기는 것도 아니다.
윌리암 골딩의 <파리 대왕>은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의 대결을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골딩은 1911년 영국 태생으로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후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전쟁 후 교사로 일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고 198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물이 들어 있는 열매껍질을 들고는 무릎을 꿇었다. 동그란 햇볕의 반사점이 얼굴에 맞아 그 반사로 물속에 밝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는 놀라며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거기 보이는 것은 이미 자기의 모습이 아니었고 무시무시한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물을 내버리고 신명 나게 웃으며 일어섰다. 못가에는 그의 건장한 육체가 하나의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에는 남의 이목을 끌고 그들을 위압하는 서슬이 있었다. 그는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고 그의 웃음소리는 피에 주린 으르렁 소리로 변했다.”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악은 언제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이러한 악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면에 잠재하던 악이 나타남은 자아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여기서 더위에 녹초가 된 암퇘지는 쓰러졌다. 소년들은 마구 덤벼들었다. 이 미지의 세계로부터의 무시무시한 습격에 암퇘지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비명을 지르고 뛰어오르고 했다. 온통 땀과 소음과 피와 공포의 난장판이었다. 로저는 쓰러진 암퇘지 주위를 달리면서 살이 드러나 보이기만 하면 닥치는 대로 창으로 찔러댔다. 잭은 암퇘지를 올라타고 창칼로 내리 찔렀다. 로저는 마땅한 곳을 찾아서 제 몸무게를 가누지 못해 자빠질 정도로 창을 밀어 넣기 시작하였다. 창은 조금씩 속으로 밀려 들어가고 겁에 질린 암퇘지의 비명은 귀가 따가운 절규로 변하였다. 이어 잭은 목을 땄다. 뜨거운 피가 두 손에 함빡 튀어 올랐다. 밑에 깔린 암퇘지는 축 늘어지고 소년들은 나른해지며 이제 원을 풀었다.”
악은 사냥감을 찾기 마련이다. 소설에서는 소년들이 단순히 하는 사냥놀이로 묘사하였지만, 사실 이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악이 활동을 함을 뜻한다. 악에 익숙해지자 사람들은 악을 즐기는 정도의 단계까지 이를 수 있음을 상징한다.
“ ‘어느 편이 좋겠어? 너희들같이 얼굴에 색칠한 검둥이처럼 구는 것과 랠프같이 지각 있게 구는 것과’
오랑캐들 사이에서 큰 함성이 터졌다. 돼지는 다시 소리쳤다.
‘규칙을 지키고 합심을 하는 것과 사냥이나 하고 살생을 하는 것, 어느 편이 더 좋겠어?’
랠프는 커다란 바위 구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그것을 본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바위는 턱에서 무릎으로 스치면서 돼지를 쳤다. 소라는 산산조각 박살이 나서 이제 없어져 버렸다. 무슨 말을 하기는커녕 신음 소리를 낼 틈도 없이 돼지는 바위에서 조금 떨어진 채 공중으로 치솟았다. 떨어지면서 재주를 넘었다. 바위는 두 번 튀어 오르더니 숲 속으로 처박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돼지는 40피트 아래로 내려가 바다 위로 삐져나온 네모진 붉은 바위에 등을 부딪치고 떨어졌다. 머리가 터져서 골통이 튀어나와 빨갛게 됐다.”
우리의 내면에는 선과 악, 합리적 이성과 광기, 동물적 본능과 도덕적 양심의 대결이 항상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년들은 자신들의 친구마저 죽여버리고 말았다. 악은 진화한다. 진화된 악은 서슴지 않고 더 커다란 사냥감을 찾아 헤매며 이를 해치워 버린다. 선은 어쩌면 이러한 악을 상대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인간이 악의 노예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잭은 암퇘지 머리를 들고 막대기의 뾰족한 끝에 부드러운 목구멍을 쑤셔 박았다. 막대기는 아가리께로 빠져나왔다. 그는 물러섰다. 암퇘지 머리는 거기에 걸려 있고 피가 막대기로 조금 흘러내렸다. 창자 더미 위에는 파리가 새까맣게 모여들어서 톱질을 하는 소리같이 윙윙거렸다. 얼마 후에 이 파리떼는 사이먼을 알아챘다. 잔뜩 배를 채웠기 때문에 파리떼는 사이먼이 흘리는 땀을 찾아와 마셨다. 파리떼는 사이먼의 콧구멍 아래를 간질이고 넓적다리 위에서 등넘기 장난을 하였다. 파리떼는 새까마니 다채로운 초록빛을 띠고 있었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리고 사이먼의 전면에는 <파리 대왕>이 막대기에 매달려 씽끗거리고 있었다.”
우리의 내면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선과 악은 대결을 벌이고 있다. 어느 사회건 악의 집단은 있고 그 우두머리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가 바로 파리 대왕이다. 우리 사회의 악의 우두머리는 누구일까?
우리의 내면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살아가면서 어느 쪽으로 더 가야 하는 것인지는 본인 자신의 결정일뿐이다. 나는 선한 모습이 더 많은 사람일까, 아니면 악의 모습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악을 대변하는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파리 대왕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