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는 나의 초상화

by 지나온 시간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날의 초상>은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정치, 종교, 지적 방황을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며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은 자아에 대해서 그리고 사회 현실에 대해 나름대로 인식하고 자신의 정신적 성장을 이루어 가면서 홀로 예술가의 세계를 향해 가게 된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에피퍼니(epiphany)”라는 것이다. 이는 어떤 사실을 깨닫게 되는 중요한 순간을 뜻하는 데 주인공이 삶의 과정에서 바로 이러한 에피퍼니를 통하여 진정한 예술가로 거듭나게 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내가 믿지 않게 된 것은, 그것이 나의 가정이든 나의 조국이든 나의 교회든, 결코 섬기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이나 예술 양식을 빌려 나 자신을 가능한 한 자유로이, 가능한 한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는 무기인 침묵, 유배 및 간계를 이용하도록 하겠어.”


주인공 니덜러스는 자신이 평생 걸어가야 할 길이 예술가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의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일까? 그것은 그가 어릴 때부터 겪은 그 모든 삶의 여로가 이러한 결론을 내리게 될 수밖에 없게 했던 것이다.


“부당한 처사였다. 불공평하고 잔인했다. 식당에 앉아서 그는 자기가 받은 모욕을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결국 그는 혹시 자기의 얼굴에 무엇인가 잘못된 곳이 있어서 나쁜 짓이나 꾀할 학생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었고, 거울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얼굴에 그런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므로 그 처사는 잔인하고 부당하고 불공평했다.”


주인공 니덜러스는 서서히 자아를 찾아가며 권위에 저항해 가기 시작한다. 세상이나 삶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옳지 않은 것에 침묵하기보다는 이에 맞서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의 피는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어둡고 더러운 거리를 헤매면서 음침한 골목과 문간들을 기웃거리거나 무슨 소리건 들으려고 했다. 좌절한 채 어슬렁거리면 다니는 야수처럼 그는 혼자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자기와 동류인 사람과 함께 죄를 짓고 싶었고, 다른 사람과 함께 죄를 짓자고 강요하고 싶었으며, 죄를 지으며 그녀와 함께 희열하고 싶었다. 그는 어떤 어두운 실재가 암흑으로부터 거역할 수 없게 그를 엄습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이제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어린아이의 순진함에서 삶의 진정한 모습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선도 있고 악도 존재한다는 그 현실에 눈을 뜨고 그 세상에 스스로 발을 담그기로 마음먹는다. 삶을 모르는 예술가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마 그것은 예술가의 본능이 이미 그의 속에 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채플의 통로를 따라오고 있을 때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고 머리 가죽은 마치 귀신의 손에 닿기라도 한 것처럼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가 계단을 거쳐 복도로 들어가니 벽에 걸린 외투와 우의들이 교수대에 매어 달린 죄수처럼 머리와 형체도 없이 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는 한 걸음씩 발을 뗄 때마다 자신이 이미 죽었고, 자기의 영혼은 육체라는 집에서 비틀려 나왔으며, 지금은 자기가 걷잡을 수 없이 허공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었다.”


삶은 평탄하지만은 않다. 그가 경험한 세상이 그동안 그가 배워왔고 생각해 왔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니덜러스는 이제 넘어서야 할 삶의 단계에 이르렀다. 직접 인간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를 몸소 겪으며 그는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오, 이럴 수가! 독신(瀆神)적인 환희의 폭발 속에서 스티븐의 영혼은 절규했다. 그는 갑자기 그녀에게서 몸을 돌리고 둑을 건너가기 시작했다. 그의 뺨이 화끈거리고 몸은 불덩이 같았으며 사지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그는 멀리 모래밭을 활보하면서 바다를 향해 미친 듯이 노래했고, 그동안 그를 향해 소리치고 있던 삶이 임박해지자 그것을 맞이하기 위해 외쳤다. 그녀의 이미지는 영원히 그의 영혼 속으로 옮겨갔고, 그가 거룩한 침묵 속에서 느끼던 황홀경을 깨는 언어는 없었다. 그녀의 눈이 그를 불렀고 그의 영혼은 그 부름을 받고 뛰었다. 살며, 과오를 범하며, 타락해 보고, 승리하고, 삶에서 삶을 재창조하는 거다! 한 야성의 천사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필멸의 인간적 젊음과 아름다움을 갖춘 천사요 삶의 아름다운 궁정에서 보내온 사자인 그가 황홀한 순간에 그를 위해 과오와 영광의 길로 통하는 문을 모두 활짝 열어젖히려 하고 있었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주인공 니덜러스는 그의 평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한다. 그것은 그가 어떤 인생의 길을 걸어갈지 확신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그의 내면은 환희로 가득 차게 되었다. 자신의 존재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게 된 것이다.


그는 이제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확실히 알게 된다. 예술가로서의 삶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결심을 한다. 과거 자신을 얽매고 있었던 모든 것을 버리고 홀로 그 길을 위해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이제 그에게는 매일매일의 삶이 바로 그 예술가로서 살아가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그렇게 그려지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초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오늘 나의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내가 그린 나의 오늘 모습은 훗날 나의 어떤 초상을 만들게 될까?


KakaoTalk_20211112_140948048.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간 몰락의 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