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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극복한 예술

by 지나온 시간들


https://youtu.be/fexLfIqpo8M


로맹 롤랑은 1866년 프랑스 클람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후에 이 학교와 파리 대학교의 예술사, 음악사 교수가 된다. 그는 소설과 희곡을 쓰면서 <장 크리스토프>등 많은 작품을 남기게 된다. 1915년 노벨상 위원회는 "그의 문학적 창작이 지닌 숭고한 이상주의와 그가 인간 존재의 서로 다른 유형들로 묘사한 진리에 대한 사랑과 공감에 대한 헌사로서 이 상을 드립니다"라는 이유로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부여한다.


<베토벤의 생애>는 롤랑이 제일 존경했던 베토벤의 예술가적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마도 그것은 넋이 고뇌에 젖어 버리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까닭이다. 넋은 극진히도 기쁨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쁨이 없을 때는 그것을 스스로 창조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가 너무도 참혹할 때, 넋은 과거의 추억으로 산다. 행복하였던 시절은 일시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광채는 그 시절이 지나가 버린 뒤에도 오랫동안 꺼지지 않고 빛을 던진다. 빈에서 외롭고 불행하게 지냈던 베토벤은 고향의 추억 속에 피난처를 구하였던 것이다. 당시의 그의 음악 사상은 모두 그러한 추억을 지니지 않은 것이 없다.”


예술의 깊이는 삶의 경험과 비례하는 것일까? 베토벤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못했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순수한 사랑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고뇌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1801년 그의 정열의 대상은 줄리에타 기차르디였던 듯하다. 그는 <월광>이라고 불리는 그 유명한 소나타를 이 여성에게 바침으로써 그 자신을 불멸화하였다. ‘나의 생활은 지금까지 보다는 퍽이나 평온하게 되었다.’ 이렇게 그는 베겔러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한결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있다. 이 변화는 어느 정다운 소녀가 이루어 준 것이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2년 이래 처음으로 이와 같은 행복한 순간을 가져 본다.’

하지만 이 행복한 순간의 대가는 쓰라린 것이었다. 첫째로 이 사랑은 그로 하여금 자신이 불구자라는 것의 비참함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던 자신의 불안정한 생활 상태를 더욱더 뼈저리게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줄리에타는 경박하고 유치하고 이기적인 여자였다. 그녀는 참혹스럽게 베토벤의 마음을 괴롭혔다. 그리고 1803년 11월에 갈렌베르크 백작과 결혼해 버렸다. 이 같은 정열은 넋을 유린시킨다. 베토벤의 경우처럼 넋을 파멸시켜 버릴 위험성이 있다.”


이 시기가 베토벤의 일생에서 가장 절망스러운 시기였다. 당시 그는 유서마저 써 놓은 상태였다. 그는 이러한 참혹한 운명에 대항할 힘마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비통한 고뇌에 쌓여 울부짖기만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은 그를 저버렸다. 1801년에는 다시금 그는 외로워졌다. 그러나 드디어 그에게 명성이 왔다. 그리고 또 자기의 힘에 대한 자각도 생겼다. 바야흐로 그는 혈기 왕성한 나이에 이른 것이다. 이제는 아무것도 꺼릴 것 없이, 사회도, 인습도, 세인의 공론도 돌아볼 것 없이, 세차고 거센 자기의 기질대로 행동하였다.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삼갈 필요가 있으랴? 사랑도 야심도 이제는 없다. 자기의 힘, 다만 이것만이 그에게 남아 있다. 자기 힘의 자각에서 오는 기쁨, 그 힘을 사용하고자 하는 거의 남용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따름이다.”


베토벤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자신의 한계를 알았고 삶의 끝을 경험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그 위대한 예술가는 우리에게 가슴 깊은 울림이 있는 음악을 남겼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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