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버나드 쇼는 185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그의 아버지는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했고, 성악가였던 어머니는 쇼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 남편을 버리고 자신의 음악 선생을 따라 런던으로 떠나버리고 만다. 쇼는 열다섯 살에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않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일을 하게 된다. 이때 그는 예술적 소양을 키울 수 있었고, 독학으로 자신의 지식을 쌓아간다. 소설을 썼으나 성공하지는 못했고, 희곡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는 평생에 60여 편의 희곡을 썼는데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극작가라는 칭송을 받는다. 노벨상 위원회는 “이상주의와 인간성이 특징인 그의 작품에 대해, 자극적인 풍자는 종종 시적인 아름다움이 주입되어 있다”라는 이유로 1925년 노벨 문학상을 버나드 쇼에게 수여한다.
그의 희곡 중 <피그말리온>은 많은 인기를 누렸고, 후에 <마이 페어 레이디>라는 이름으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피그말리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가이다. 그는 키프로스에 살고 있었는데, 키프로스 여성들은 아프로디테의 저주로 인해 나그네에게 몸을 팔아야 했다. 피그말리온은 여인들에 대한 혐오로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조각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러던 중 이상적인 여인을 스스로 조각하게 되고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매일 갈라테이아를 바라보던 그는 자신이 조각한 그 조각상을 사랑하게 된다. 피그말리온은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에게 그 조각상을 실제의 여인이 되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아프로디테는 간절한 그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고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조각 여인인 갈라테이아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심리학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이는 타인의 기대나 관심에 의해 결과가 좋아지는 효과를 말한다. 예를 들어 교사가 학생에게 많은 기대를 하면 그로 인해 학생의 실력이 향상되는 현상을 일컫기도 한다.
버나드 쇼가 쓴 희곡 <피그말리온>은 이 신화를 바탕으로 했다. 조각가였던 피그말리온이 희곡에서는 언어학자 헨리 히긴스다. 히긴스는 한 인간의 가치는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로 인해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피그말리온이 조각한 조각상에 대응해서 이 희곡에서는 비천한 속어를 사용하는 꽃 파는 처녀 엘리자가 나온다. 히긴스는 엘리자에게 고급 언어를 사용하도록 훈련을 시켜서 사교계의 우아한 여성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내기를 하게 된다.
엘리자는 음성학자였던 히긴스의 도움으로 상류 사회의 매력적이며 우아한 여성으로 변신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엘리자 : 선생님의 얼굴을 갈겨 주고 싶었으니까요. 당신을 죽이고 싶어. 이 이기적인 냉혹한. 나를 그곳에 그냥 놔주디 그랬어? 빈민굴에 말이야. 끝났다고 신에게 감사했으니까 나를 거기다 처박으면 되겠네.”
엘리자는 히긴스의 도움으로 상류 사회에서 우아한 여성으로서 남들에게 좋은 대우를 받았는데 왜 그것을 싫어하는 것일까? 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회,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로 그 사람의 많은 것을 판단하는 신분 사회는 어쩌면 허울 좋은 빈 껍데기 인지도 모른다. 엘리자가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히긴스 : 아, 그래? 발톱을 집어넣어? 이 고양이야. 어디서 감히 나한테 성질을 부려? 앉아서 진정해. (그녀를 거칠게 안락의자에 쑤셔 박아 앉힌다.)”
“엘리자: (더 강한 힘과 무게에 압도되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나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히긴스 : 네가 어떻게 될지 내가 도대체 어떻게 알아? 네가 어떻게 되든지 내가 무슨 상관이야?”
“엘리자 : 당신은 상관도 안 해. 난 알고 있었어. 내가 죽어도 상관하지 않을 거야. 나는 당신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저 슬리퍼만도 못해”
“히긴스 : 너는 끝난 것을 신에게 감사하지 않니? 이제 너는 자유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되잖아”
“엘리자 : 난 무엇에 어울리는 사람이죠? 나를 무엇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만드신 거예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해요? 난 뭘 해야 하죠? 나는 어떻게 될까요?”
엘리자는 단지 자신이 히긴스의 게임의 부속품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히긴스의 목적에 의해서 그동안 자신이 이용당했고 이제는 그에게 자신이 필요 없어졌으니 버림을 받을 거라는 것을 알고 너무나 슬펐던 것이다.
그녀는 원했던 것은 인간적인 삶이었다. 엘리자는 인간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없는 히긴스에 대해 실망을 하고 그의 곁을 떠난다. 아마 그녀는 진정한 자아가 아닌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이 싫기도 했을 것이다. 엘리자는 누구에 의한 자아가 아닌 참다운 자아의 중요함을 알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