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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풍파를 넘어서

by 지나온 시간들

1892년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펄 벅은 생후 3개월 만에 그녀의 부모와 함께 중국으로 가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는 중국 선교사였다. 펄 벅은 이루 18세까지 중국에서 자랐고, 18세가 되던 해 미국으로 돌아와 랜돌프-메이컨 여대에 진학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 펄 벅은 3년 뒤 미국인 농학자 로싱 벅과 결혼한다. 자신의 일에는 열정적이었던 로싱 벅이었지만 아내를 이해하고 가정에는 충실하지 못했다. 선교 일에만 열중하며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많았던 펄 벅은 자신의 남편인 로싱 벅에게도 그러한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결혼 생활에 대해 절망한다. 펄 벅은 첫째 딸을 낳아 이름을 캐롤이라 지었는데 얼마 후 자신의 딸인 캐롤이 정신지체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캐롤을 치료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과정에서는 남편인 로싱 벅은 아내와 딸에게 무관심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녀는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녀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펄 벅이 쓴 <성장하지 않는 아이>는 자신의 딸인 캐롤에 대한 이야기이다.


1927년 펄 벅은 난징 대학살에 겪으며 죽을 고비를 넘긴다. 이때 그녀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을 실감한다. 자신이 중국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왔고 중국을 사랑하더라도 자신의 피는 미국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사실은 그녀의 문학에 숨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 그녀가 쓴 소설이 바로 <대지>이다. 결혼 생활에 지쳐 있었던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출판해 준 출판사 사장이었던 월시에게 사랑을 느끼고 로싱 벅과 헤어져 미국으로 간다. 이후 펄 벅은 단 한 번도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펄 벅은 두 번째 딸인 재니스를 입양하고 캐롤과 함께 미국에서 살아가며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인권운동가로 활약하면서 그녀는 흑인을 비롯해 피부색이 다른 7명의 아이를 더 입양하여 키운다. <대지>는 그녀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주었고 펄 벅은 1938년 미국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대지>는 중국인 왕룽이 가난한 농부에서 대지주가 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왕룽의 아내인 오란과 함께 그가 수많은 인생의 과정을 겪으며 삶의 고난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제가 그 집에 다시 갈 때는 아이를 안고 가겠습니다. 아기에게 붉은 저고리와 붉은 꽃무늬를 놓은 바지를 입히고 머리엔 금빛 부처님을 새긴 모자를 씌우고, 발에는 범을 그리니 꼬까신을 신기고, 저도 새 신을 신고 검은 공단으로 새 옷을 입고 가서 내가 일하던 부엌에도 가보고 큰 마나님이 아편을 피우시는 대청에도 가보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자의 모습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겠습니다.”


왕룽의 아내 오란은 한이 많은 여인이었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오란의 부모는 그녀를 부잣집에 돈을 주고 노예로 팔았다. 그 부잣집에서 거친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수모와 무시를 당했을까? 비록 가난한 농부인 왕룽에게 시집을 왔지만, 자신도 아이를 낳아서 떳떳이 그 부잣집에 가서 그동안의 한을 풀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아내, 전에는 그 집 종으로 있었지만 이제는 그 집에서 대대로 지녀오던 소중한 토지의 한 부분을 사들이는 사람의 아내가 된 것이다. 오란도 그 점을 생각했음인지 갑자기 그의 의견에 찬성을 했다.”


왕룽과 그의 아내 오란은 부지런히 일을 해서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씩 땅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땅의 중요함을 그들은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몇 달이 지나도 비는 오지 않았다. 가을이 가까워 오자 가끔 가늘고 엷은 구름이 모여드는 때가 있었다. 거리에는 일없이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제각기 하늘을 쳐다보면서 어느 구름덩이에 비가 들었거니 안 들었거니 하고 입씨름을 했다. 그러나 구름이 채 모이기도 전에 먼 사막의 열풍이 서북으로부터 강하게 불어와서 마룻바닥에 앉은 먼지를 쓸어내듯 구름을 몰아냈다. 그런 뒷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개이고 아침마다 눈부신 태양이 솟아서 창공을 거닌 뒤에 저녁이면 쓸쓸히 져 버렸다.”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심한 가뭄으로 인해 수확을 하나도 하지 못하게 되자 왕룽의 집에는 먹을 것이 떨어져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왕룽은 피같이 모은 땅을 팔지 않은 채 그 어려운 세월을 버텨나갔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이겨나가기로 했다.


“그들은 여러 날 동안 흙을 물에 풀어서 먹었다. 그것으로써 끝끝내 목숨을 이어나갈 수 없을지라도 우선 먹기에 다소의 영양분이 있으므로 생명의 흙이라고들 불렀다. 그것으로 죽을 쑤어 먹이면 허풍산이가 된 아이들의 배를 채울 수 있기 때문에 한동안일망정 그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가 있었다.”


너무나 먹을 것이 없이 그들은 흙마저 물에 끓어 먹을 정도였다. 어떻게 그 세월을 견뎌낼지 앞이 깜깜할 정도였다. 사람의 운명은 실로 알 수가 없다. 어떤 일이 닥칠지 그 누구도 모른다. 오늘이 있다고 내일을 장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는 중에 적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쫙 퍼지고 재산을 다소간이라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왕룽은 아무것도 겁나는 것이 없었다. 이웃 움막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그러했다. 그들은 그 첫째 그 적군이라는 게 어디 군사인지도 모르는 일이고 또 잃어버릴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아깝다고 생각해 본 일도 없는 생명이 있을 뿐이었다. 설사 당장에 적군이 쳐들어온다 할지라도 지금 겪고 있는 곤란보다 더 어려워질 수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왕룽의 가족은 가뭄으로 인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어도 남쪽 지방으로 이주해간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삶은 너무나 팍팍했다. 하루 살아가기도 벅찼다. 그러는 가운데 공산 혁명이 일어나고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너무나 힘든 시절을 겪었기에 전쟁이 나 목숨을 잃는 것도 겁나지 않을 정도였다.


“맞거나 서방님의 침실에 끌려가거나 해요. 그것도 한 서방님만 그러는 것이 아니고 여러 서방님이 마음 내키는 대로 데려가니까요. 또 서방님끼리 서로 의논해서 <자네는 오늘 밤에 데리고 자게, 난 내일 밤으로 하지> 하고 서로 바꿔가면서 이종 저종을 닥치는 대로 더럽혀 주어요. 그리고 나서 서방님들이 내어 놓으면 그때는 청지기들이 또 저희끼리 의논하고 서로 돌려가면서 그러는 거에요. 얼굴이 예쁜 종이면 아이 적부터 그 지경을 당하게 되지요.”


왕룽은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 자신의 딸아이를 부잣집의 종으로 팔아 버릴 생각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오란은 자신이 가난한 집의 딸로서 부잣집의 종으로 팔려 가 그곳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그 사정을 너무나 잘 알았다. 삶의 아픔을 오란만큼 뼈저리게 경험해 본 사람은 없었다. 왕룽의 처였던 오란은 삶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았기에 그 험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왕룽은 어쩔 줄을 몰랐다. 이 노인과 직접 흥정을 하여 토지를 사기도 어려운 일이고 가슴에 품은 보석은 불덩이를 간직한 것처럼 얼른 처분해야 할 것이고, 그보다도 토지에 대한 욕망이 더 컸다. 이미 마련해둔 종자만 해도 자기가 지금 가진 토지의 배 이상에 뿌릴 수 있는 것이나, 그 남은 종자를 황 부자 집 기름진 땅에 뿌렸으면 하는 생각을 걷잡을 수 없었다.”


전쟁 중에 오란은 우연히 부잣집에서 많은 보석을 줍게 된다. 왕룽 가족은 전쟁을 피해 자신들의 땅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 보석으로 왕룽은 많은 땅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란 덕분에 왕룽은 대지주가 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에 이른다.


“그는 보는 것 듣는 것이 모두 전과 같이 탐탁하질 않았다. 그가 언제나 드나들던 찻집도 전에는 한 사람의 농군으로 별로 대접을 받지 못했었지만 지금은 그 집이 오히려 우중충한 것이 시원찮아 보였다. 이전 같으면 그가 들어가도 아무도 아는 척하는 사람도 없었고 심부름하는 아이도 그리 고분고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가 들어오는 걸 보면 서로 무릎을 꾹꾹 찌르면서 수군대는 소리가 그에게도 들렸다.”


왕룽은 대지주가 되어 돈을 엄청나게 벌게 되자 예전의 일들이 따분해졌다. 이에 그는 새로운 자극을 찾게 되는데 우연히 만난 연화라는 여인을 좋아하게 되었고 결국 그녀를 첩으로 들이게 된다. 그러는 사이 그는 자신이 농부라는 사실을 잊고 연화에 빠지게 되면서 병적이 애정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오란은 남편의 그러한 삶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병적인 애정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열병이 시간이 흐르며 식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대지로 돌아와 농사의 일에 전념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 하늘은 캄캄해지고 공기는 메뚜기의 나래치는 소리로 웅웅 울렸다. 그리고 땅에도 수없이 떨어졌다. 메뚜기가 그냥 지나간 곳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내려앉은 곳은 삽시간에 황무지와 같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천명이라고 한숨을 지었으나 왕룽은 성을 내어 메뚜기를 후려쳐서 떨어지는 것을 발로 문질러 죽였다. 일꾼들도 도리깨를 휘둘러서 메뚜기를 떨어뜨려 불에 타 죽게 하고 물에 빠져 죽게 했다. 그들은 몇백만 마리를 죽였지만, 수없이 많은 메뚜기 떼를 막아낼 길이 없었다.”


삶의 고통은 끝없이 몰려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난관을 겪은 왕룽이었지만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메뚜기떼의 습격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도 왕룽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자신의 땅과 곡식을 지켜냈다.


“그들은 모두 높은 소리로 곡을 하면서 묘지로 향했다. 왕룽은 묘가에 지켜서서 아버지의 관을 먼저 묻고 오란의 관은 그동안 땅에 내려두었다. 두 사람을 묻는 왕룽의 가슴은 너무나 슬퍼서 다른 사람들같이 소리내어 울 수도 없었다. 그의 가슴은 눈물까지 말라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그는 피치 못할 운명을 당한 데 지나지 않았으며, 또 그는 아무도 따를 수 없을 만큼 훌륭하게 일을 치렀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위안했다.”


왕룽은 한평생을 같이 한 그의 아버지와 아내인 오란의 장례를 치른다. 세월은 그렇게 지나가고 삶은 그렇게 종지부를 찍으며 그러한 운명을 우리는 피할 수 없다.


삶은 수많은 풍파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삶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오늘 나에게 닥치는 풍파는 어떠한 것일까? 나는 그 풍파를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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