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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꿈꾸는 이유

by 지나온 시간들


1953년 루마니아 니츠키로르프에서 태어난 헤르타 뮐러는 어린 시절 나치의 몰락과 루마니아 독재 권력의 강압 통치를 아무 힘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루마니아에서 독일계 소수민족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2차 대전 때 나치 무장 친위대에 징집되었었다.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강제 수용소에서 5년 동안 강제 노역을 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정체 모를 공포와 불안 속에서 성장해야 했다. 그것은 그녀의 내면에 그대로 남아 그녀의 문학 작품에 고스란히 스며있을 수밖에 없었다.


헤르타 뮐러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후 차우셰스크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작가들의 모임인 ‘악티온스그루페 바나트’에 유일한 여성으로 참가한다. 이때 그녀가 쓴 작품이 바로 <저지대>이다. 루마니아 비밀경찰의 감시와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1987년 독일로 망명한다. 그 후 전체주의의 공포를 묘사한 소설을 잇달아 발표하게 된다. 노벨상 위원회는 2009년 "솔직한 산문과 서정성에 집중한 이 사람은, 좌절한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였습니다"라는 이유로 그녀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다.


그녀의 작품 <저지대>는 시 같으면서도 산문 같은 느낌의 상당히 응축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에는 억압과 공포에 억눌려 살고 있는 한 소녀의 시점에서 당시의 사회상을 고발하고 있다.


거짓과 폭력, 무관심과 가난이 일상을 지배했고 힘든 생활의 연속에서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아픈 현실이 작품 속에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삶의 감정조차 표현하기 힘든 현실은 살아남기 위한 투쟁에 불과했다.


“마을 변두리에 낡은 살림살이들이 버려져 있다. 밑이 빠지고 우그러져 폐기 처분된 냄비, 녹슨 양동이, 판때기가 깨지고 밑받침이 떨어져 나간 화덕, 구멍 숭숭 뚫린 난로 연통, 밑이 빠진 세숫대야에서 풀이 자라나 노랗게 빛나는 꽃을 피운다.”


그들의 삶은 버려진 삶이었다. 삶 자체가 온전할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행복이나 기쁨은 그들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폐기 처분된 살림살이처럼 그들의 삶도 그렇게 내버려지고 있었다.


“명절이면 늘 그랬듯이, 그날도 우리 집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이 사진에서도 그걸 알 수 있다. 설탕물을 묻혀 말아 올린 내 삐딱한 곱슬머리와 내 삐딱한 미소에서.

나는 머리를 다 빗고 옷을 입고서 뒷마당으로 나갔다. 변소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는, 바지를 내리고 구린내 나는 변소에 앉아 엉엉 울었다.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싶었다. 밖에서 사람 소리가 나면 얼른 울음을 그쳤다. 집안에서 이유 없이 울어서는 안 되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따금 어머니는 우는 나를 매로 때리면서 말했다. 자, 이제 너한테도 실컷 울 이유가 생겼다.”


어린 소녀는 우는 것도 맘대로 울 수가 없었다. 숨어서 우는 수밖에 없었고, 엄마의 손찌검은 실컷 울 수 있는 변명이 될 정도였다. 삶의 고달픔은 나이 하고도 상관없었다. 그곳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그들의 운명이었다.


“두꺼비가 포석 위를 폴짝폴짝 뛰어갔다. 두꺼비 살갗은 지나치게 늘어진 데다가 온통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두꺼비는 딸기 사이로 기어들어갔다. 생기 없이 늘어진 살갗 덕분에 딸기 이파리 하나 바스락거리지 않았다.

할머니의 양귀비는 마을에서 가장 예뻤다. 할머니의 양귀비는 울타리보다 높이 자라 하얀 꽃을 탐스럽게 피웠다. 바람이 불면 긴 줄기들이 서로 맞부딪쳤고 꽃들이 파르르 떨었다. 하지만 꽃잎은 한 장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소설에서는 화자인 어린 소녀가 자연, 식물, 동물에 대한 꿈을 꾸는 듯한 장면들이 나온다. 이는 그녀가 암울하고 숨을 쉬기조차 힘든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현실을 잊기 위해 그리고 조금이라도 삶의 기쁨이라도 맛보기 위해 환상을 꿈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현실에서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는 항상 어려움이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느 정도로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을 줄지라도 우리는 살아가야 할 수밖에 없다. 현실을 외면한 삶은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는 현실에 발붙이고 있지만,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삶과 죽음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안목도 필요하다. 그러한 안목을 가지고 있다면 환상을 꿈꿀지라도 현실을 버텨내고 이겨낼 수 있다. 언젠간 좋은 날도 오리라는 꿈마저 없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나 비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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