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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Nov 23. 2021

신의 눈에는 보석처럼 보인다

르 클레지오의 소설 <황금 물고기>는 주인공 라일라가 겪는 파란만장한 삶의 역정을 다룬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로 인정받는 르 클레지오의 작품이다. 그는 한국 문단과의 교류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 약 1년 정도 한국에 살기도 한 지한파이다. 제주를 배경으로 쓴 <폭풍우>와 서울을 배경으로 한 <빛나 : 서울 하늘 아래>도 있다. 200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 그때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너무 어렸던 데다가 그 후에 살아온 모든 나날이 그 기억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그 일은 차라리 꿈이랄까, 아득하면서도 끔찍한 악몽처럼 밤마다 되살아나고 때로는 낮에도 나를 괴롭힌다. 햇살에 눈이 부시고 먼지가 날리는 텅 빈 거리, 푸른 하늘, 검은 새의 고통스런 울음소리, 그때 갑자기 한 남자의 손이 나를 잡아 커다란 자루 속에 던져 넣고, 나는 숨이 막혀 버둥거린다. 나를 산 사람은 랄라 아스마이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라일라는 어린 시절 인신매매를 당해 아랍과 프랑스, 미국을 거쳐 다시 자신의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온다. 그녀의 삶은 이슬람 문명과 전통적인 유럽, 신대륙인 미국을 그렇게 물고기처럼 표류하다 다시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운명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거리를 두려워했다. 마당을 벗어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거리 쪽으로 열려 있는 푸른색 대문 밖으로 한 발짝도 나서려 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나를 밖으로 데려나가려 하면, 소리 지르고 울면서 벽에 매달렸다. 때로는 도망쳐서 가구 밑에 숨기도 했다. 나는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으며,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은 내 두 눈을 헤집으며 내 몸 깊숙이 찌르고 들어왔다. 시멘트를 다루느라 거칠어진 그의 두 손은 마치 내 옷 밑으로 파고든 두 마리의 차갑고 건조한 동물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는 너무도 두려워서 내 심장이 거칠게 뛰는 것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그 모든 것들, 눈부시던 거리, 검은색 자루, 머리에 받은 타격이 되살아났다. 그 뒤로 느껴진 것은 나를 만지는 손, 나의 배를 누르는 손, 나를 아프게 하는 손이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지 못한다. 아마도 너무 두려운 나머지 암캐처럼 오줌을 쌌다고 생각한다. 그러자 그가 몸을 떼고 손을 거두었으며, 순간 나는 그의 뒤로 몸을 빼서 짐승처럼 날렵하게 빠져나와, 소리를 지르며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서 욕실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곳이 열쇠로 잠그는 유일한 방이었기 때문이다.”


  그녀 앞에 주어진 세상은 자신을 물고기처럼 생각하고 발걸음이 닿는 세상의 모든 곳에서 그녀를 잡아먹으려 했다. 그러한 거친 세상에 그녀는 준비도 없었고 숨으며 도망 다녀야만 했다. 


 “나는 내가 곧 죽으리라고 믿었다. 내게는 먹을 것이 없었다. 조라는 약간 누르스름한 흰색의 긴 털을 가진 시추 종의 작은 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나는 그 개를 위해 쌀을 끓여야 했다. 그녀는 그 쌀 위에 닭국물을 끼얹었고, 그것이 그녀가 내게 주는 전부였다. 나는 그녀의 작은 개보다도 먹을 것이 없었다. 때때로 나는 부엌에서 과일을 훔쳤다. 들킬 경우에 일어날 일이 두렵기는 했다. 내 다리와 팔은 그녀의 허리띠에 맞아 퍼런 멍으로 덮여 있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도 배가 고파 부엌 찬장에서 설탕과 비스킷과 과일을 계속해서 훔쳐 먹었다.”


  주인공 라일라에게 삶은 너무나 비참했다. 개만도 못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생존의 본능으로 버텼다. 삶의 끝까지는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그들은 내 바로 옆을 지나쳤는데, 내가 보도 가장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자, 역시 가죽옷을 입은 한 사내가 손으로 나를 밀쳤다. 나는 잔뜩 찡그린 그의 얼굴과 입술과, 잠깐 동안 나를 노려보던 두 눈, 도마뱀의 눈처럼 경직되고 삭막한 그 눈을 보았다. 나는 길가 하수도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때 경찰차의 경적이 들렸고, 나는 아슬아슬하게 마예르 부인의 하숙집 건물 문 앞까지 달려갈 수 있었다.”


  주인공 라일라는 프랑스 파리로 도피를 하지만, 그곳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 다른 삶의 고통만 존재할 뿐이었다. 삶의 아픔과 어려움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되는 것일까?


  “더 이상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이제 나는 마침내 내 여행의 끝에 다다랐음을 안다. 어느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다. 말라붙은 소금처럼 새하얀 거리, 부동의 벽돌, 까마귀 울음소리. 십오 년 전에, 영겁의 시간 전에, 물 때문에 생긴 분쟁, 우물을 놓고 벌인 싸움, 복수를 위하여 힐랄 부족의 적인 크리우이가 부족의 누군가가 나를 유괴해간 곳이 바로 이곳이다. 바닷물에 손을 담그면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 어느 강의 물을 만지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사막 먼지에 손을 올려놓으며, 나는 내가 태어난 땅을 만진다. 내 어머니의 손을 만진다.”


 라일라는 세상 속에 힘없이 온갖 일들을 겪으며 돌고 돌았던 연약한 물고기였지만, 그 모든 것을 경험하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은 황금 물고기였음을 인식한다. 세상은 그녀를 얽매려 했지만 그녀는 본래 강한 생명력과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황금 물고기였던 것이다. 


  하킴의 할아버지는 라일라에게 말한다. 

“아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신의 눈에는 보석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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