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일본의 가장 서정적인 소설 중의 하나이다. 일본에서 가장 눈이 많이 오는 지역 중의 하나인 니가타현을 배경으로 진솔한 남녀의 사랑을 그렸다. 그는 1968년 이 작품으로 일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묘한 얘기도 다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한 시간 가량 지나 여자가 하녀를 따라왔을 즈음, 시마무라는 화들짝 놀라 앉음새를 고쳤다. 곧바로 자리를 뜨는 하녀의 소매를 여자가 붙들어 다시 제자리에 앉혔다. 여자의 인상은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했다. 발가락 뒤 오목한 곳까지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여름 산들을 둘러보아 온 자신의 눈 때문인가 하고 시마무라가 의심했을 정도였다.”
주인공은 왜 눈이 많이 오는 지역에 갔던 것일까? 겨울 내내 하얀 눈이 쌓여 있는 곳에 간 이유는 무엇일까?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지역에서 가슴이 설레고, 자신의 관심을 끄는 그러한 사랑이 그리웠던 것은 아닐까?
“그러자 여자는 이제 그의 손바닥에 몸을 맡기고 그대로 낙서를 시작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쓰겠다며 연극이나 영화배우들의 이름을 이삼십 개 남짓 늘어놓고 나서, 이번에는 시마무라라고만 무수히 적어나갔다.”
새로운 인연이 불현듯 찾아왔다. 하얀 눈을 닮은 게이샤였다. 서로의 마음은 열렸고 손바닥 위에 그 사람의 이름을 계속 쓰기만 한다.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아무도 모른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지만 끝이 어떻게 될지 알 수도 없다.
“고마코의 아들의 약혼녀, 요코가 아들의 새 애인, 그러나 아들이 얼마 못 가 죽는다면, 시마무라의 머리에는 또다시 헛수고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고마코가 약혼자로서의 약속을 끝까지 지킨 것도, 몸을 팔아서까지 요양시킨 것도 모두 헛수고가 아니고 무엇이랴.”
순수한 사랑도 허무할지 모른다. 삶은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랑의 의미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 ‘힘들어요. 당신은 이제 도쿄로 돌아가세요. 힘들어요.’
힘들다는 건 여행자에게 깊이 빠져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일까? 아니면 이럴 때 꾹 참고 견뎌야 하는 안타까움 때문일까? 여자의 마음이 여기까지 깊어졌나 보다 하고 시마무라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힘들지 않은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순탄한 것만 생각한다면 사랑을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랑은 어쨌든 과정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것을 함께 겪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만이 문제가 될 뿐이다.
“ ‘당신은 좋은 여자야’
‘어떻게 좋은데요?’
‘좋은 여자야’
‘이상한 사람’하고 어깨가 가려운 듯 얼굴을 가렸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갑자기 한쪽 팔꿈치를 세우고 고개를 들고는,
‘그게 무슨 뜻이죠? 네, 무슨 말이에요’ ”
진정한 사랑은 많은 것이 필요 없다. 하나면 충분하다. 그 이상을 바란다는 것은 상대를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을 더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앞서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상대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그것으로 충분할 뿐이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 좋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