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은 1809년 영국 슈루즈버리에서 태어났다. 9살에 사립학교에 입학하였으나 학교 공부엔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자연이었다. 넓은 들판은 돌아다니면서 각종 동물, 식물, 광물, 곤충들을 수집하였다. 16살에 에든버러 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였으나 의학에도 관심을 갖지 못했고, 자연사 수업을 들으며 식물을 채집하고 표본을 조사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의학에 흥미를 갖지 못해 아버지의 권유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나 이 또한 그의 적성은 아니었다.
하지만 케임브리지에서 그는 헨슬로 교수의 식물학 강의에 사로잡혀 그의 지도를 받았다. 헨슬로 교수는 다윈의 잠재력을 알아보았고 다윈은 헨슬로의 야외채집에 항상 따라다녔다. 대학을 졸업한 후 1831년 헨슬로 교수의 권유로 비글호의 세계 여행에 동행하게 되면서 그의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다윈은 그의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삼촌의 도움으로 비글호에 동행할 수 있었다. 그는 비글호를 타고 1931년 12월부터 1836년 10월까지 약 5년간 전 세계를 다니며 수많은 식물, 동물, 광물, 곤충 등을 접하게 되었다. 다윈은 그동안 화석으로만 접했던 몇몇 동물들을 실제로 관찰하기도 했다. 또한, 지역에 따라 같은 종들이 서로 차이가 나는 것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비글호 항해에서 중요했던 것은 남아메리카의 서쪽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수십 마일 떨어진 여러 섬들에서 다른 종류의 동물과 식물이 분포되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특히 그는 핀치라는 새의 모양이 섬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핀치새는 우리나라의 참새처럼 덩치가 조그마한 새이다. 다윈은 이 핀치새의 관찰에서 우선 생물의 종이 시간과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르다는 점을 계속해서 확인하였고, 그것은 다윈으로 하여금 종의 진화를 사실로 받아들이게 했다. 그리고 지역에 따른 종의 차이는 진화가 주위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나 기후와 풍토가 거의 흡사한 섬들에 서로 다른 종들이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은 종의 진화가 단순히 자연적 조건에 의해 기계적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비글호 항해를 마친 다윈에게는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수용할 만한 사실이 되었고,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가, 즉 진화의 메커니즘에 그는 관심을 갖게 된다. 항해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와 1839년 “비글호 항해기”를 출간하였고, 그는 영국 왕립학회의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다윈은 진화의 메커니즘을 원예가와 동식물 사육가들의 경험에서 찾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르는 동식물 중에서 원하는 성질을 지닌 것을 골라서 번식시킴으로써 품종을 개량하고 있었다. 즉, 인위선택을 통하여 인간의 필요에 적응하는 품종 쪽으로 종의 진화를 이루어낸 것이었다. 다윈은 이와 같은 인위선택에 대한 것과 유사하게 진화의 메커니즘이 자연선택에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는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종들은 세대를 거듭하여 진화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종들은 멸종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기후나 풍토 등의 자연환경이 거의 비슷한 갈라파고스 군도의 다른 섬들에서 동식물 분포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도 종들 사이의 경쟁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1858년 다윈은 당시에 말레이 군도의 생태계를 조사하고 있던 월리스(A. Wallace)로부터 아주 충격적인 편지를 받았다. 월리스는 자신이 출간하려는 논문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다윈에게 솔직한 의견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는데, 그 내용이 다윈이 생각한 것과 너무 비슷하였던 것이다. 다행히도 다윈은 라이엘과 후커의 중재로 1858년 다윈과 월리스의 공동저자의 형식으로 “변종을 형성하려는 종의 경향 및 자연선택에 의한 종과 변종의 연속성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출판하게 되었다. 그리고 1859년 다윈은 그의 이론을 종합하여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쓰게 된다. 이렇게 하여 인류는 진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