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늘 존재함은 나와 다른 이를 위함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보다 나은 자아의 모습으로 되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주위의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 하나라도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발전이 없고, 항상 그 자리에 정체되어 있거나, 오히려 뒤로 퇴보하는 사람이라면 오늘 그가 존재하는 이유는 합당하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할지라도 무언가를 위해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다면 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침묵할 줄 아는 자, 고독해질 줄 아는 자,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자, 어떤 것을 보더라고 그 안에서 극복되어야 할 것들을 찾아내는 성향을 타고난 자, 승리에 임해서 관용을 베풀고 패배한 자의 작은 허영심에 너그러울 뿐 아니라 생기발랄하며 인내심이 있고 단순하며 거대한 허영심을 경멸하는 자, 더 많은 위험에 처했고 더 많이 생산적이며 더 많이 행복한 자, 존재를 최대한 풍요롭게 실현하고 최대한 만끽하는 비밀은 바로 이것이다. 위험하게 살아라. (즐거운 학문, 니체)”
더 나은 자아를 위해서라면 나 자신의 과거의 모습을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과감한 용기로 나 자신의 모습을 계속 탈피해 나갈 필요가 있다. 위험하게 산다는 것은 그러한 도전이 없이는 그러한 성취가 불가능하기에 하는 말일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삶에 던져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삶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가 없다. 두려워하지 말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하더라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험한 길이라도 그 길을 나서야 한다.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항상 그 자리에서 예전의 그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진리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자신을 위험에 던져서라도 그 길을 서슴없이 달려가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신이 어떠한 미래의 모습으로 되어 있을 것인지는 선택을 해야 하는 오로지 그의 몫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