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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Dec 29. 2021

나는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것일까?

프랑스의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는 자신의 책 <실증 철학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별은 우리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밤하늘에 빛나는 작은 점이라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알아낼 수 없다. 지금의 관측장비는 물론이고, 미래에 발명될 그 어떤 장비들도 별까지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시 실증 철학의 측면에서 보면 합리적인 추론일 수 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보면 분명한 오류일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는 정밀한 관측기구로 별 내부에 어떠한 성분이 존재하는지 그 성분들이 어떠한 일들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게 되었다. 별의 종류도 별 내부의 원소들의 질량에 따라 상세하게 구별 지어 그 진화의 과정까지 어느 정도는 알아낼 수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원자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 영국의 돌턴은 ‘모든 물체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원자설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19세기의 과학자들마저 원자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전혀 관측된 사실도 없는 원자를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라고 반박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당대 유명한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비인 대학의 에른스트 마흐도 원자설을 ‘현실 세계와 우연히 맞아떨어지는 계산용 도구’ 정도로만 생각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브라운 운동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면서 원자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입증하였고 후에 발견된 정밀한 현미경으로 우리는 이제 원자의 존재를 관측할 수 있게 되었다.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다는 것을 단정하는 것은 또 하나의 오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바탕으로 옳다고 고집하는 것보다는 항상 열린 가능성을 두는 것이 현명하다. 


  물론 자신이 현재까지 알고 있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그것에 집착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주장과 집착은 분명히 다르다. 그 집착은 고집이 되고 이로 인해 오류가 발생할 수 있으며 그 결과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러한 태도가 보다 나은 단계로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게 만들어주는 토대가 될 수 있다. 


  내가 예전에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나 다 경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에도 자신이 옳다는 것을 항상 주장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 것일까? 


  요즘엔 자신이 옳다고 확신을 하며 주장을 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생기곤 한다. 왠지 그런 사람이 두렵기조차 하다. 이쪽에서 본 것과 저쪽에서 본 것은 분명히 다를 수가 있다. 한쪽에서 본 것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현재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옳지 않을 수 있고, 다른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나도 지난 시간에 많은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러한 오류를 더 이상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동안 범했던 오류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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