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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an 05. 2022

너무 친절하지 마세요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때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일단 자리에 앉으면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주문을 받고 나면 물 하고 반찬을 차려 준다. 식사가 나오면 뜨거운 음식을 바로 앞에 먹기 편하도록 놓아준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당연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나는 왠지 마음이 안쓰럽다. 하루 종일 얼마나 많은 사람한테 이러한 일들을 반복할까 생각해 본다. 식사 시간에 사람이 몰릴 때에는 정신없이 그 많은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테고 하루 종일 그렇게 일을 하고 나면 얼마나 몸이 고단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식당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나는 잘 안다. 나는 군대에서 3~4개월 정도 취사병이었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저녁 8시까지 앉아 있기는커녕 쉴 틈 없이 일했다. 칼질을 할 줄 몰랐던 나는 열 손가락 안 베어본 손이 없었다. 한 끼를 끝낼 때마다 고참한테 두들겨 맞았다. 무언가 문제가 분명히 하나씩은 있었고 거기에 대한 체벌이었다. 밥이 좀 설익었다든가, 밥이 좀 질다던가, 국이 좀 싱겁다던가, 좀 짜다든가, 반찬의 양이 좀 모자라든가, 좀 남았던가, 그렇게 매끼를 할 때마다 문제가 없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설거지가 끝나면 집합해서 무조건 수십 대씩 맞곤 했다. 하지만 다음 식사에도 다른 문제가 또 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또 집합해서 또 두드려 맞아야만 했다.


 만약에 장교나 하사관들 혹은 일반병 중에 고참들이 밥을 먹고 나서 음식에 대한 불만이 나오는 날에는 더 맞아야 했다. 맞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어떤 날은 밥을 푸는 쇠 주걱으로 머리를 맞아 머리에서 피가 터진 날도 있었고 빠따로 너무 세게 맞아서 허벅지가 불어 터지는 바람에 의자에 앉지 못한 날도 있었다.


 그렇게 매일 두들겨 맞는 것도 모자라 장교나 하사관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마저 무조건 심부름을 시켰다. 몸은 하나인데 할 일이 너무 많아 감당이 되지 않았다.


  내가 식당에 가서 서빙을 보는 분들을 보면 군대 취사병 때의 일이 무의식 중에 박혀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냥 그분들이 미안하고 고맙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식당에 가면 되도록 일하는 분들께 이것저것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냥 주는 대로 먹고 계산을 치르고 나온다.


 나는 음식에 대한 맛을 잘 모른다. 아니 모른다기보다 그 맛에 대한 평가를 아예 하지 않는다.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짜면 짠 대로 그냥 주어진 대로 다 맛있다고 생각하며 먹는다. 왜냐하면 취사병 때의 일이 머릿속에 남아 그 음식을 평가하는 것조차 두렵기 때문이다.


  군대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유학을 떠났다. 미국에 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느 레스토랑을 갔는데 주문을 받는 분이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있는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당황하여 주문을 할 수가 없었다. 왜 무릎을 꿇고 나를 위로 쳐다보며 주문을 하는지 너무나 놀라 그냥 아무거나 빨리 주문을 해버렸다. 그분을 얼른 일어나게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솔직히 나는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아 어떤 음식을 시켰는지 음식 맛이 어땠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물론 문화가 달라 손님이 존중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기는 하겠지만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 그 자리를 얼른 벗어나고만 싶었을 뿐이다.


 세월이 흘러 나도 나이를 많이 먹고 가끔 좋은 식당을 가기는 하지만 아직도 나는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을 보면 고생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분들이야 친절을 베풀면서 돈을 벌기는 하겠지만 하루 종일 그 고된 일을 하는 것을 생각하면 내가 예전에 취사병 때의 일이 생각나 마음이 안쓰럽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분들에게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저한테는 너무 친절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쉬엄쉬엄 일하세요.’ 그 마음을 전달하지는 못하지만, 조용히 먹고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로 대신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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