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기 전(친구에게, 3/1)

by 지나온 시간들

친구야,

이제 겨울이 물러가고 가고 있어. 오늘은 오전 내내 비가 내렸어. 어제 달력도 한 장 떼어냈어. 어제 그렇게 2월은 보냈고 오늘부터 3월이야.


오늘은 휴일이라 집에서 책을 보다가 영화 한 편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도 알겠지만, 나는 한참 지나간 것을 늦게서야 보는 습관이 있어.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도 마찬가지야. 일하다 보면 개봉하는 영화를 보러 갈 시간도 없고 텔레비전 방송 시간에 맞추어 앉아 있을 수도 없으니 나중에 시간이 될 때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한참이나 지나서 보곤 해.


누군가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라는 영화가 좋다고 해서 오늘 그 영화를 봤어. 날짜를 보니까 1996년에 개봉한 영화더라구. 영화를 보면서 26년이 지나고 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조금 궁금하기도 했어. 사실 나는 이 영화를 이전에 전혀 들어본 적이 없어. 어제 처음 알게 된 영화야. 에단 호크(Ethan Hawke)가 데뷔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찍은 영화 같아.


영화에서 에단 호크가 연기한 제시는 유레일을 타고 비엔나로 향해 가고 있었어. 이 기차에는 파리로 가는 셀린도 타고 있었지. 우연히 기차 안에서 대화를 시작하게 된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면서 점점 호감을 느껴. 그리고 그들은 하루만이라도 비엔나를 구경하며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을 해.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였어. 아침에 해가 뜨면 제시는 비엔나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고, 셀린은 파리로 가는 유레일을 타야만 했어. 제시는 미국에서 셀린은 파리에서 각자의 일이 있었으니까.


그들은 주어진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을 위해 비엔나에서 정말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서로 노력을 해. 비엔나 시내 여기저기를 다니며 새로운 경험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아름다운 비엔나를 마음껏 구경을 하지. 평상시 같았으면 하지 않을 것들도 다음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뭐든지 둘이 마음을 합해서 시도를 해.


그러면서 그들은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지. 하지만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 밤이 깊어지고 마지막으로 비엔나의 아름다운 공원 잔디밭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 둘이 이미 많이 친해져서 셀린은 제시의 무릎을 베고 누워 서로 과거 이야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도 해.


그리고 결국 해가 뜨면서 아침이 되지. 이제는 헤어져야만 할 시간이 된 거야. 파리로 가는 기차역에서 셀린과 제시는 단 하루였지만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을 보낸 것에 이별이라는 것을 너무 아쉬워해.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미 다 끝났으니 잘 가라는 말밖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어. 셀린이 탄 기차는 떠나기 시작하고 그렇게 둘은 작별을 하게 되지.


영화 제목을 왜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라고 했을까? 그것은 아마 시간의 유한성을 알면 우리 삶이 훨씬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제목을 붙이지 않았나 싶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 알면 우리는 그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과 좋은 추억만을 남기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그 시간이 영원히 우리에게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까 우리는 오늘을 좋은 추억이 남는 그런 시간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제시와 셀린은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해가 뜨기 전까지라는 것을 알았기에 둘은 얼마밖에 되지 않은 그 시간을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받아주고 배려하고 베풀며 아름답고 좋은 추억의 시간으로 만들었던 것 같아.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흔히 우리는 시간이 무한정 주어졌다는 착각 아닌 착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 내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그래서 아름답고 좋은 추억도 있겠지만, 기억하기 싫고 좋지 않은 추억도 있는 것이 아닐까 해.


이 영화는 사실 흥미진진하거나 전개감이 빠르거나 하지는 않아. 아주 담담하고 조용히 흘러가는 강물 같은 영화야. 영화 앞부분이 별로 재미가 없어서 그만 볼까 하다가 나에게 이 영화를 추천해 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냥 끝까지 다 봤어. 그런데 다 보고 나니 중간에 그만두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친구야,

너도 시간이 되면 이 영화를 한번 보렴. 이 영화가 상영되고 나서 2편 비포 선셋, 3편 비포 미드나잇도 나왔어. 다음에 시간에 되면 2편, 3편도 볼 생각이야. 오늘 남은 휴일 잘 보내고 내일부터 또 열심히 살아보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항상 유한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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