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성장과 진화

인간의 내면의 일부에는 악이 존재하며 이는 성장하고 또한 진화한다. 악은 인간에 의해 실현되며, 이는 오직 인간의 책임일 뿐이다.

  “악은 세상에 나오기 위해 질병이나 부당함, 어두운 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로지 인간만 필요로 할 뿐이다. (한스 루드비히 크뢰버)”

  제네바 협정에는 비전투 요원을 해치거나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해 무기를 버린 전투 요원을 해치는 자는 전범이 된다는 규정이 있다. 제네바 협정에 위배되는 명령은 불법이며 따라서 이러한 명령에 대해서는 복종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의 실제 현장에서 이 규정이 과연 잘 지켜질까?

  베트남의 남부 지역인 밀라이라는 마을에서 1968년 3월 어느 날에 있었던 일이다. 미군 정보부는 이 마을의 주민들이 베트콩을 숨겨주고 있다는 사실을 입수하였다. 이에 미 보병 제11여단 20사단 1대대 소속 1개 중대는 이 마을의 베트콩 토벌 작전에 투입되었다.

  문제는 이 지역의 민간인들이 공산군 게릴라들의 통치하에 있었기에 전투 요원들과 비전투 요원을 구별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미군들은 그 지역에 사는 베트남사람들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기동타격대가 말라이 마을에 진입했을 때 그들의 눈에는 단 한 명의 전투 요원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당시 그 마을 어떤 베트남인들도 전혀 무장을 하고 있지 않았으며 그 누구도 미군에게 총을 겨누지조차 않았다. 미군들의 눈에 띄는 사람이라고는 무장하지 않은 여성, 어린아이, 노인들이 전부였다.

  미군 기동타격대의 작전은 3월 16일 아침에 시작되었다. 이날 이 중대 요원들이 사살한 마을 주민은 500~600명으로 추산된다. 그들은 무턱대고 이 마을의 아무 집에나 들어가 안에 누가 있든 그저 소총으로 갈겨버리기도 했고, 도망가는 주민들과 아이들을 뒤에서 무차별적으로 사격하기도 했다. 특히 윌리암 컬리 소위의 지휘하에 있던 제1소대는 마을 사람들을 20명에서 50명 정도 모아놓고 소총이나 기관단총 그리고 수류탄으로 아무런 무기도 들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했다. 이 학살은 이날 오전 내내 계속되었으며, 미군인들에게 발견되는 이 마을 주민들은 모두 사망하였다.

  이 사건은 당시 미 육군에 의해 은폐되었으나, 미국인이었던 론 리덴아워라는 사람에 의해 미국 의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학살을 자행한 미국 군인들은 전쟁에 투입되기 위해 베트남으로 가기 전에도 이러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이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전쟁에 참여하기 전에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시민들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이러한 집단악을 저지를 수 있게 만든 것일까? 그것은 그들의 내면속에 있는 악의 일부가 성장하고 진화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전쟁의 작전에 투입되었더라도 자신의 행하는 일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판단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 자신의 내면속에 존재했던 악의 성장과 진화를 인식하지 못했고. 이를 스스로 책임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 어떤 이는 악한 면을 죽이고 선한 모습을 성장시키지만, 또 다른 이는 이와 반대로 선의 면을 죽이고 악한 면을 성장시키기도 한다. 물론 주위 환경의 영향도 있지만, 이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자신에게 있을 뿐이다.

  무기도 없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한순간에 생명을 잃어버린 말라이 마을 주민들의 영혼은 누가 달래줄 수 있을까? 그날 이루어졌던 학살이 잘못되었으니 이를 자행한 기동타격대의 사과와 반성이 있다고 한들 선량했던 그 베트남 주민들이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올 수가 있을까? 자신들이 행한 학살이 잘못이라는 것을 작전이 수행되는 동안 그 기동 타격대원들은 정녕 몰랐을까? 그들 눈에는 무장하지 않은 여성, 어린아이, 노인들이 모두 베트콩과 관련된 사람들이라고 확신을 했던 것일까?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수백 명의 마을 주민들 모두를 죽였던 것일까?

  현재 우크라이나 침공을 행한 러시아나 베트남 전쟁을 일으킨 미국이나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