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은 왜 자신의 책 제목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했을까? 내가 아는 바로는 프랑스 사람들은 브람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당시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여주인공 폴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이, 남자 주인공 로제는 이브 몽땅, 그리고 시몽은 안소니 퍼킨스가 역할을 맡았다.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여주인공 폴이 로제와 동거하다가 사이가 멀어진 후,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시몽을 만나 지내다가 다시 로제와 합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사강은 사랑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울림을 준다.
소설에서 주인공 폴은 로제와 함께 커다란 문제없이 동거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에게 서서히 지쳐갔다.
“로제가 도착하면 그에게 설명하리라, 설명하려 애쓰리라. 자신이 지쳤다는 것, 그들 두 사람 사이에 하나의 규율처럼 자리잡은 이 자유를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유는 로제만 이용하고 있고, 그녀에게는 자유가 고독을 의미할 뿐이 아니던가. 문득 그녀는 아무도 없는 자신의 아파트가 무섭고 쓸모없게 여겨졌다. 그가 그녀를 혼자 자게 내버려 두는 일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었다. 아파트는 텅 비어 있었다.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오늘 밤도 혼자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 역시 그녀에게는, 사람이 잔 흔적이 없는 침대 속에서, 오랜 병이라도 앓은 것처럼 무기력한 평온 속에서 보내야 하는 외로운 밤들의 긴 연속처럼 여겨졌다.”
로제는 폴과 동거하면서도 다른 여자를 만나는 자유분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로제의 마음 속에는 항상 폴이 있었다.
“로제는 자기 집 앞에 차를 세워 놓고 오랫동안 걸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면서 조금씩 보폭을 넓혔다. 기분이 몹시 좋았다. 폴을 만날 때 마다 그는 무척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었다. 오늘 밤 그녀 곁을 떠나면서 그녀가 슬퍼하는 것을 느꼈지만 그는 뭐라고 말해 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쳐가는 폴에게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연하의 젊은 남자 시몽이었다. 시몽은 한 눈에 폴에게 반하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생각했던 것이 바로 브람스 음악회였다. 브람스를 좋아하지 않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브람스 음악 연주회를 가기 위해서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브람스는 자신보다 14살 연상인 로버트 슈만의 아내 클라라 슈만을 평생 마음에 품은 채 독신으로 살았다. 시몽은 자신보다 연상인 폴을 보면서 브람스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 질문을 받고 폴은 많은 생각을 한다. 갑자기 다가온 젊은 시몽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오랫동안 같이 지냈던 로제가 있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폴은 로제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회상하며 생각에 잠긴다.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가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로제와 헤어진 후 시몽과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엔 로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날 식당에 간 폴과 시몽은 다른 여인과 함께 온 로제를 만나게 된다. 식사를 하고 폴은 시몽과 그리고 로제는 다른 여인과 춤을 추기 시작한다.
“저녁 식사 후 그들은 춤을 추었다. 로제는 그 여자 앞에서 언제나처럼 어색하게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시몽이 일어났다. 그의 춤은 능숙했다. 두 눈을 감춘 채 그는 유연하고 날렵하게 춤을 추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녀는 시몽에게 몸을 내맡겼다. 어느 순간 그녀의 드러난 팔이 가무잡잡한 여자의 등에 두르고 있던 로제의 손을 스쳤다. 그녀는 눈을 떴다. 로제와 폴, 그들 두 사람은 상대의 어깨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움직임도, 리듬도 없는 느린 춤곡이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미소조차 보이지 않은 채, 서로 알은체도 하지 않은 채 십 센티미터 거리에서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로제는 여자의 등에서 손을 떼어 폴의 팔을 향해 뻗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그녀의 팔에 와 닿았다. 순간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어찌나 간절했던지 그녀는 눈을 감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윽고 시몽은 몸을 돌렸고, 로제와 폴은 더 이상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폴과 로제의 손가락이 닿는 순간 폴은 로제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폴은 시몽과 이별을 고하고 로제와 다시 합친다. 폴과 로제는 다시 동거를 시작했지만 로제가 예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사강은 사랑의 덧없음에 주목한다. 실제 사강이 사랑을 믿느냐는 인터뷰에 그녀는 답했다.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2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3년이라고 해 두죠.”
사랑은 영원할 수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사랑은 그냥 받아들임 아닐까 싶다. 그것이 자신 없다면 사랑을 시작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랑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어렵다. 나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기에 힘들다. 내 자신을 앞세운다면 사랑은 인스턴트 커피 마시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은 없다.
영화에 나오는 브람스의 음악에는 교향곡 제3번 3악장이 있다. 브람스 교향곡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선율이다. 그의 음악 중에 가장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곡이다. 영화 주인공의 낭만적인 사랑을 브람스의 이 멜로디가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