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피지만

by 지나온 시간들

친구야,

오늘 불현듯 김훈의 <화장>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책장에 꽂혀있던 것을 꺼내 읽었어. 예전에 읽었지만, 오늘 왜 이 책이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 나도 잘 몰라. 봄이 와 생명이 온 세상에 만발한 데 하필 죽음에 관한 이 책이 손에 잡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은 중년 남자인 주인공이 갑자기 뇌종양에 걸린 아내를 돌보다가 결국 사망하여 화장으로 장례를 마치는 과정까지의 이야기야.


“아내는 두통 발작이 도지면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시퍼런 위액까지 토해냈다. 검불처럼 늘어져 있던 아내는 아직도 저런 힘이 남아 있을까 싶게 뼈만 남은 육신으로 몸부림을 치다가 실신했다. 실신하면 바로 똥을 쌌다. 항문 괄약근이 열려서, 아내의 똥은 오랫동안 비실비실 흘러나왔다. 마스크를 쓴 간병인이 기저귀로 아내의 사타구니를 막았다. 아내의 똥은 멀건 액즙이었다. 김 조각과 미음 속의 낱알과 달걀 흰자위까지도 소화되지 않은 채로 쏟아져나왔다. 삭다 만 배설물의 악취는 찌를 듯이 날카로웠다. 그 악취 속에서 아내가 내일 넘겨야 하는 다섯 종류의 약들의 냄새가 섞여서 겉돌았다. 주로 액즙에 불과했던 그 배설물은 흘러나오자마자 바로 기저귀에 스몄고, 양이래 봐야 한 공기도 못 되었지만 똥 냄새와 약 냄새가 섞이지 않고 제가끔 날뛰었다.”


예전에는 죽음이 나와는 멀리 있었다고 생각을 했었어. 하지만 갈수록 이제 죽음은 나의 주변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죽음을 가까이 느낄수록 삶의 소중함이 마음속 깊이 다가오는 것 같아. 죽음의 모습을 보면 우리 인간은 정말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돼. 죽음의 앞에서는 우리의 치부를 가릴 수도 없고, 자존감이나 존엄도 한낱 아침이슬처럼 그냥 다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모든 것을 그렇게 허무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직은 조금 무섭기도 해.


“당신께 달려가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사랑한다고, 시급히 자백하지 않으면 아내와 저와 그리고 이 병원과 울트라 마린블루의 화장품과 이미지들이 모두 일시에 증발해 버리고 말 것 같은 조바심으로 저는 발을 구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저의 조바심을 아신다면, 여자인 당신의 가슴은 저를 안아주실 것만 같았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


시한부 인생의 아내를 간호하는 주인공에게 어떻게 젊은 회사 여직원인 추은주가 그의 마음에 들어왔던 것일까? 삶과 죽음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공존하는 것일까?


인간이 아무리 이성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본능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러한 본능에 따라가는 것이 솔직한 인간성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소각 완료라는 글자가 소각로 문짝에 켜져 있었다. 유리창 너머에서 화장장 직원이 다시 거수경례를 해 보였다. 직원은 버튼을 눌러 소각로 입구를 열었다. 바람에 불려 가다가 멎은 듯한 뼛조각 몇 점과 재들이 소각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대퇴부인지 두개골인지 알 수 없이 흩뿌려진 조각들이었다. 희고, 가벼워 보였다. 아내의 뇌수 속에서 반짝이던 종양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유리창 너머로 소각로 속은 아직도 뜨거워 보였다. 빗자루를 든 직원이 소각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땀방울이 유골에 떨어지지 않도록 이마에 수건을 동이고 있었다. 직원이 빗자루로 뼛가루를 쓸어서 쓰레받기에 담아서 유골함에 넣었다. 직원은 가루부터 먼저 담고 큰 뼛조각들은 유골함의 위쪽에 담았다. 유골함 뚜껑을 닫고 나서 직원은 다시 거수경례를 보냈다. 직원은 유골함을 흰 보자기에 쌌다. 유리창 아래쪽 작은 구멍을 열고 직원은 유골함을 내밀었다. 나는 유골함을 받았다. 딸이 울었다.”


화장이 끝나고 나면 우리가 남기는 것은 몇 줌 안 되는 회색빛 재밖에 남지 않겠지. 우리는 무엇을 위해 평생토록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토록 발버둥 치며 오늘을 애쓰는 이유의 최종적인 목적지는 어디인 것일까?


삶이 경이로울 수 있는 것은 죽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죽음이란 마지막 순간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요즘 너무나 느끼고 있어. 그래서 요즘엔 오늘이라는 현재가 더욱 애착이 가는 것 같아. 얼마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 그 시간을 정말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현실, 이제 꽃이 사방에 피는 계절에 죽음을 생각하기는 싫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오늘 피는 아름다운 꽃을 다른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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