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이체르 소나타

by 지나온 시간들

https://youtu.be/Pdld0X76fDY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베토벤의 ‘크로이체르 소나타’와 그 흐름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소설에서 주인공인 포즈드니셰프는 아내를 살해하게 된다. 살해의 원인은 다름 아닌 음악 때문이었다.


평상시 아내가 자주 부부싸움을 했던 그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아내가 바이올린니스트 트루하체프스키와 소나타를 연습하는 것을 보고 심한 질투에 사로잡힌다. 파리에서 온 트루하체프스키는 최신 유행을 타는 멋진 젊은 남자였다. 아내는 그를 만나고 나서부터 평상시와는 다르게 삶에서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포즈드니셰프는 아내와 트루하체프스키가 어느 날 파티장에서 둘이 함께 베토벤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두 사람이 ‘음악으로 맺어진 음욕 관계’라고 확신하기 시작한다.


포즈드니셰프는 말한다.

“그들은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연주했습니다. 처음 나오는 프레스토를 아세요? 이 소나타는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음악이 영혼을 고양시킨다는 것은 헛소리이고 거짓말입니다. 음악은 영혼을 자극할 따름입니다. 에너지와 감정을 끌어올려 파멸로 이어지게 합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들으면서 포즈드니셰프의 말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베토벤의 이 음악은 모차르트의 자연스러운 음악의 흐름이 아니다. 인간의 격정적인 감정이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서슴지 않고 튀어나오는 듯하다. 그 내면의 기다렸다가 터지는 에너지가 사랑의 열정과 너무 흡사하다.


처음 바이올린의 연주는 조심스러우면서 천천히 진행하나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격렬하게 달려가기 시작한다. 사랑의 열정에 사로잡혀 어딘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질주하는 것 같다. 그 어떤 것도 이 감정을 조절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러나 2악장에 이르면 낭만적이면서도 우아한 느낌으로 변해간다. 여러 변주가 시작되는 것은 사랑의 진화이다. 조절과 적응이 주고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빠르고 격렬한 프레스토가 시작된다. 이제는 그 어떤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감정에만 충실하게 정신없이 달려간다. 파국의 피날레가 느껴진다. 치명적인 사랑에 빠졌기에 불행한 사랑임을 알면서도 감정에 헤어 나오지 못한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의 질주와도 같다. 그렇게 감정은 점점 고조되다가 잠시 조용해진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결국 크로에체르 소나타는 벼랑 끝에서 떨어지는 듯 갑자기 추락하는 듯한 느낌으로 끝나버린다. 바로 포즈드니셰프와 그의 아내와의 사랑의 끝이 그렇게 끝이 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왜 <크로에체르 소나타>라는 소설을 썼을까? 그 자신의 삶과 아무런 연관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결혼 생활과 말년의 삶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톨스토이는 이런 말을 남겼다.

“평생을 한 여자 또는 한 남자와 사랑한다는 것은 양초 하나가 평생 탄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대문호 톨스토이에게도 사랑은 커다란 상처를 남겨주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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