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의 발레 ‘백조의 호수’에는 백조와 흑조가 나온다. 여기서 주인공을 맡는 발레리나는 1인 2역을 해야 한다. 바로 백조와 흑조의 역할이다. 하지만 백조와 흑조의 성격은 완전히 정반대이다. 백조는 나약하고 청순하지만, 흑조는 사악하며 강한 성격이다. 주연을 해야 하는 배우는 완전히 내면이 다른 역할을 해야 하기에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아무나 맡을 수 있는 역이 아니다. 두 가지의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할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발레는 영화와 달리 바로 현장에서 관람이 되는 것이기에 더욱 어렵다.
어떻게 해야 백조가 흑조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당연히 그것은 백조가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모든 성격을 버려야만 가능하다. 완전한 자기부정이 없고서는 백조가 흑조로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차이코스프키는 왜 백조를 흑조로 변하게 했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버리고 더 나은 미래의 모습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 생각해서가 아닐까? 또한 배우로서는 주어진 하나의 배역을 완전히 탈피하여 내면의 세계가 다른 배역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음으로 진정한 예술인의 경지로 올라설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떤 노력을 거쳐 백조가 흑조로 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자아를 완전히 변하게 함으로써 가능할 뿐이다. 심리학적으로 말한다면 이드(Id)를 가로막고 있는 에고(Ego)를 완전히 없애야 가능하다 할 것이다.
나탈리 포트만이 주연했던 영화 ‘블랙 스완’은 주인공인 니나(나탈리 포트만)가 백조에서 완벽한 흑조가 되기 위한 그녀의 피맺힌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열망은 오직 백조에서 흑조로 완벽히 변신할 수 있는 연기가 전부였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직 그러한 갈망만 있었다.
그녀의 역할은 라이벌인 릴리의 등장으로 위기에 처해진다. 니나는 자신의 꿈인 백조와 흑조의 완벽한 역할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바친다. 하지만 그녀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그녀 안에 있는 무의식은 그것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괴롭고 힘들었던 니나, 자신의 옛 자아를 넘어서기 위해 그녀의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과거를 버리기 위해 자신이 아꼈던 인형들을 내다 버리고, 술집에서 잔뜩 취하고, 더 이상 과거의 슬프고 가녀린 백조에 머무는 것을 거부한다. 마침내 그녀는 완벽히 백조에서 흑조로 변신을 하게 된다. 완전한 예술의 탄생의 기쁨을 맛본 니나, 하지만 그 대가 또한 엄청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삶은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다. 또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것이 삶의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바라고 소원하는 것이 진정으로 의미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한 이상의 성취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삶은 단순히 원하는 것을 얻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것도 의미 있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더 중요한 것을 잃을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 흑조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백조로서 만족하며 사는 것 또한 삶의 다른 답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