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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pr 05. 2022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바뀔 때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자신이 상대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가 가지고 있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좋게 받아들일 수 있다. 반대로 상대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가 가지고 있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좋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삶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삶을 아름답게 바라본다면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삶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자신이 아무리 좋은 상황에 있다고 하더라고 삶은 괴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타 무르자니의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는 삶을 바라보는 시야에 따라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그녀는 말기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고, 결국 혼수상태에 빠져 거의 죽음의 직전까지 가는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을 겪게 된다.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의료진이 충분히 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하더라고 기적적으로 사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사실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아니타 무르자니의 경우 의료진은 그녀가 다시 회복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음의 문 앞에서 다시 돌아왔다. 임사체험이라는 것이 신비적이고, 종교적이며,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것을 경험하고 나서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예전의 삶이 아닌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에 있다. 


  임사체험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경험이나 계기로 인해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뀔 수 있다. 어떤 한순간의 경험이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그 방향의 선회가 우리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새로운 세계로 접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란 오직 자신을 사랑함으로써만, 자기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가슴을 따름으로써만, 그리고 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함으로써만 얻어진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삶이 목적이 없는 것 같고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 때, 그것은 바로 내가 자신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본연의 모습에서, 내가 이곳에 와 있는 목적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일은 내가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을 때, 텔레비전 광고나 신문, 대형 제약회사, 친구들, 문화적 사회적 신념 같은 외부 원천에 내 힘을 내어줄 때 일어나곤 했다.”


  아니타 무르자니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임사체험은 그녀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녀는 이제 삶에 대해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우며 어떻게 그녀에게 주어진 나머지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지 그녀는 확실히 인식했다. 


 예전에 바라보았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소중했고,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그녀 삶의 가장 소중한 터전이 된다는 것을 너무나 절실히 알 수 있었다. 


  “안으로부터 보는 관점을 갖는다는 건 내면의 안내자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온 우주가 영향을 받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면 내가 이 우주 그물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전체가 나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행복하면 우주도 행복하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 다른 이들도 전부 나를 사랑하게 된다. 내가 평화로우면 모든 창조물이 평화롭다.”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 나를 사랑하면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다. 내가 자유로우면 모든 것에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내가 평안하면 내 주위의 모든 것도 평안하다. 삶이 아름답게 느껴지면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것이 어떠한 상황일지라도, 내가 상대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더라도, 나의 시야는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할 때 깨어 있는 의식 상태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자연은 모든 것이 그저 존재하기만을 바란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몸과 주변 환경을 바꾸려 하는 대신 그저 그것들을 알아차리고 그 본질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 우리는 우주가 우리를 바꾸려 하는 대시 그저 존재하기만을 바란다는 그 장엄함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완벽하기를 바라는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춰 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비참하게 실패했을 경우라도 자신이 부적합한 존재라고 느낄 필요도 없다. 삶이 나에게 그저 존재하기를 바라는 대로 나 자신을 맡길 때 나는 가장 강한 존재가 된다. 암의 경우에도 내 쪽에서 의식적으로 뭔가 하려는 행동을 일절 멈추고 생명의 힘에 모든 걸 넘겨주었을 때 비로소 치유되었듯이 말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삶에 맞서 저항할 때가 아니라 삶과 함께 나아갈 때 가장 강한 존재인 것이다.”


  나 자신의 삶과 내 주위 사람들, 주위의 환경을 나의 뜻대로 바꾸려 할 때, 삶은 나에게 저항의 대상으로 변한다. 타자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 삶은 결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존재 그 자체로 나의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을 때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변할 수 있다. 세상은 그대로지만, 내가 바뀔 때, 세상은 나에게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강하게 들 때, 만일 내가 그것을 공격적으로 추구한다면 그로 인해 나는 우주 에너지에 맞서 싸우게 될 것이다. 그것을 손에 넣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나는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더 많이 알게 된다. 그에 반해 허용하는 것은 힘이 들지 않는다. 허용이란 놓아버림에 가깝다. 놓아버린다는 건, 모든 것이 하나이므로 내가 얻고자 하는 그것이 이미 내 것임을 깨달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삶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한다.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오로지 나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그 어떤 조건도 나의 의지를 이겨내지 못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삶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따라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행복의 조건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저 존재함으로 충분하다. 그 이상을 바란다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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