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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pr 21. 2022

인간 실격

나름대로 보다 나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주위 대부분의 사람이 추악한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는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될까? 보다 나은 사회를 희망하지만, 인간성이 상실된 채 반성 없이 타락해가는 사회상을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은 주위의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사회에 의해 점점 힘겹게 타락해 가는 한 인간의 삶의 여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삶에 대한 회의와 허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허위에 짓눌려 살아가야 했던 한 인간의 슬픈 인생은 결코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필경 저한테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하숙집에서 혼자 생활해 나갈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하숙집 방에서 혼자 가만히 있는 것이 끔찍했고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갑자기 튀어나와 일격을 가할 것 같아서, 거리로 뛰쳐나가 예의 운동과 관련된 심부름을 하거나 호리키와 싼 술을 마시며 돌아다니거나 하면서 학업도, 그림 공부도 거의 포기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간 지 이 년째 되는 11월, 연상의 유부녀와 정사 비슷한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제 운명은 일변했습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도쿄로 출장 가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말하지도 못할 정도로 마음이 여리고 순수했던 인물이었다. 주위의 사람이나 사회는 그런 주인공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환경이었는지 모른다. 주인공은 그러한 현실을 자신의 뜻대로 헤쳐 나가기에는 너무나 약한 존재였다.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이야기하지도 못한 채, 주위에서 하자는 대로 그냥 끌려다니며 살아갔던 마음 약한 그에게 우연히 닥치는 사건은 그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저희는 가마쿠라의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여자는 이 허리띠는 가게 친구한테 빌린 거니까 하면서 허리띠를 풀어서는 개어서 바위 위에 올려놓았고, 저도 망토를 벗어서 같은 곳에 놓아두고 함께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여자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기도 했고, 또 아버지 이름도 얼마간은 소위 뉴스 가치라는 것이 있어서, 신문에서도 꽤 크게 다루었나 봅니다. 저는 해변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고향에서 친척 중 한 사람이 와서 이런저런 뒤처리를 해주었습니다.”


  자살이 그나마 자신의 순수함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삶이 더 이상 더럽혀지지 않고 끝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했던 한 여인과 함께 물속으로 뛰어든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은 죽고, 자신만 살아남았다. 이 사건은 그의 삶을 온전히 흘러가게 할 수 없었다. 이후 주인공은 삶에 대한 커다란 애착 없이 주어진 대로 순간적인 판단과 선택으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결혼해서 봄이 되면 둘이서 자전거 타고 아오바 폭포를 보러 가야지 하고 그 자리에서 결심하고, 소위 단칼 승부로 처녀성이라는 요시코의 꽃을 훔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윽고 저희는 결혼했고, 그로써 얻은 기쁨은 결코 크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 후에 온 비애는 처참이라고 해도 모자랄 만큼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습니다. 저에게 세상은 역시 바닥 모를 끔찍한 곳이었습니다. 결코 그런 단칼 승부 따위로 하나부터 열까지 결정되는 손쉬운 곳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서 살아간다는 것, 그 결혼이 그저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을 때 삶은 어김없기 어긋날 수밖에 없다. 그 어긋남을 고쳐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고 사랑은 마음속으로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서로에게 상처와 아픔만 남길 뿐이다.


  “유일하게 믿었던 장정에조차 의혹을 품게 된 저는 더 이상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고, 그저 알코올에 손을 뻗칠 뿐이었습니다. 제 얼굴은 극도로 천박해졌고, 저는 아침부터 소주를 마셨고, 이빨은 흐물흐물 빠지기 시작했고, 만화도 거의 외설에 가까운 것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아니,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춘화를 모사해서 밀매했습니다. 소주를 살 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언제나 저한테서 시선을 돌리고 절절매고 있는 요시코를 보면, 이 녀석은 전혀 경계라는 것을 모르는 여자니까 그 장사꾼하고 한 번만 그랬던 게 아니지 않을까. 또 호리키는? 아니, 혹 내가 모르는 사람하고도? 하며 의심이 의심을 낳았습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을 때, 삶에 대한 애착이 없어졌을 때, 주인공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도 나름대로는 삶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인간에 관해 심각한 고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에게 닥쳤던 삶의 많은 장애물을 모두 극복해 나가기에는 힘에 겨웠다. 


  “도쿄에 큰 눈이 내린 밤이었습니다. 저는 취한 채 긴자 뒷골목을 여기는 고향에서 몇백 리, 여기는 고향에서 몇백 리, 라고 작은 목소리로 되풀이해 중얼거리듯이 노래하면서 내리는 눈을 구둣발로 차며 걷다가 갑자기 토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최초의 각혈이었습니다. 눈 위에 커다란 일장기가 그려졌습니다. 저는 잠시 쭈그리고 앉아서 더럽혀지지 않은 눈을 양손으로 쓸어 담아 얼굴을 씻으면서 울었습니다. 여기는 어디의 샛길이지? 여기는 어디의 샛길이야?”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어쩌다 보니 어느 순간 삶의 끝에 이르게 된다. 인생을 정말 의미 있게 살고 싶었고, 보다 나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이리저리 삶의 길을 걷다 보면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더 이상 걸어가야 하는 길이 남아있지 않은 순간이 된다. 


  “부인은 아무 소리 안 하고 저에게 한 상자 건넸습니다. 아 약품 또한 소주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불결하고 저주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마음속에서 절감하게 된 것은 이미 완전한 중독자가 되어버린 후였습니다. 정말 몰염치의 극치였습니다. 저는 그 약품을 손에 넣고 싶은 일념에 또 춘화 모사를 시작했고, 약국 부인과 글자 그대로 추잡한 관계까지 맺었습니다. 죽고 싶다. 숫제 죽고 싶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 무슨 짓을 해도, 무얼 해도 잘못될 뿐이다. 창피에 창피를 더할 뿐이다. 그저 추잡한 죄에 한심한 죄가 겹쳐지고, 고뇌가 증폭하고 격렬해질 뿐이야. 죽고 싶어. 죽지 않으면 안 돼.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죄의 씨앗이야, 라는 등 외곬으로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집과 약국 사이를 반미치광이처럼 왕복할 뿐이었습니다.”


  질병의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복용한 모르핀으로 인해 주인공은 모르핀 중독이 되고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희망이 존재하지 않음을 인식하게 된다. 차라리 삶을 끝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은 너무나 허무했고, 커다란 의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인간 실격.

  이제는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여기에 온 초여름쯤에는 쇠창살이 끼워진 창에서 병원 마당의 작은 연못에 빨간 수련꽃이 피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만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나 마당에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하자, 뜻밖에도 고향에서 큰 형이 넙치와 함께 저를 데리러 와서는 아버지가 지난달 말에 위궤양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네 과거는 묻지 않겠다. 생활 걱정도 시키지 않겠다. 넌 아무것도 안 해도 왜. 그 대신, 여러 가지 미련이 있겠지만 곧바로 도쿄를 떠나서 시골에서 요양 생활을 해줘. 네가 도쿄에서 저지른 일의 뒤치다꺼리는 시부타가 대강 해줄 테니까 그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큰형이 진지하게, 긴장한 듯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고향의 산하가 눈앞에 보이는 듯해서 저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있어서 커다란 아픔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정상적인 삶은 가능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주인공은 이제 삶의 마지막에 서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인생이 무엇인지, 삶이 어떠한 것인지 돌이켜보면서 담담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도 좋은 것일까? 인생은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모든 것은 그렇게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일까?


  “우리가 알던 요조는, 정말이지 순수하고, 자상하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처럼 좋은 사람이었어요.”


  처음부터 인간으로서의 실격이라는 그러한 존재로 태어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누구나가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의 삶을 어긋나게 하는 것일까? 그것이 오로지 개인 한 사람의 문제일까? 


  어떤 개인에게 알게 모르게 아픔과 상처를 주었던 사람, 그에게 인간의 추악한 모습과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사람들은 그의 아픔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간으로서의 실격은 결코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행복한 인생을 꿈꾸지 않았던 사람은 없다. 


  하지만 주인공이 조금 더 강하고, 보다 더 삶에 대해 고민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의 길을 가려고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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